권위 있는 가르침
마가복음 1장 16절~28절
권위 있는 가르침이란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인 구성원에게 인정을 받고, 사회 구성원이 그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영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권위는 스스로가 복종하는 영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강제로 복종하게 하는 영향력이 권위가 아니다.
스스로 복종하게 하는 권위는 사람의 인품을 존경해서 복종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높은 지식에 스스로 복종하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룬 사람을 존경하기도 한다.
22절에 예수님을 가르켜 권위 있는 자와 같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권위는 서기관이나 제사장과는 다른 권위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가진 권위가 무엇이었을까?
교수는 지식을 쌓고 전달함으로써 권위가 있다. 맛있는 빵을 만드는 사람을 명장이라고 말한다. 그 분들은 빵을 맛있게 만드는 경험이 그들의 권위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권위는 교수가 사랑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나오는 권위와 빵을 먹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빵을 만드는 명장의 권위가 합하여진 권위는 아닐까?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사랑을 섬김으로 보여 주었다. 바보 의사, 고 안수현(고려대 전문의, 육군 대위, 유행성 출혈염으로 사망)의사는 죽음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사랑을 보여 주었다. 예수님의 가진 권위는 가진 지식대로 실천하는 사랑의 권위라고 생각을 한다.
예수님이 가진 행동을 보인 사랑의 권위, 예수님이 가진 지식을 몸으로 실천하는 권위는 더러운 귀신을 쫓는 권위가 있다.
25절,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권위는 말하는대로 이루어지는데 권위가 있다. 그 권위가 사람의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하는 권위 일 때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된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세상을 다스릴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세상을 이길 수는 없다.
나는 어떠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
예수님이 가진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를 나타내려고 자신을 보이려고 하는 서기관들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 나 자신에게 물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