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을 넘어서

경쟁을 넘어서
요한복음3장 22절~30절

요한복음3장 26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 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 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라.”

경쟁에서 진 사람은 화가 나게 된다. 오늘 말씀이 경쟁에서 진 세례 요한의 이야기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사람들이 따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타나자 세례 요한보다 예수님을 사람들이 더 따르게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세례 요한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연애인들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산다. 대중들에게 인기가 좋은 연애인들이 인기가 떨어지면 정신적으로 힘들어 한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한 연애인은 자기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자기를 절벽으로 밀어 떨어트린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 보다 더 인기가 좋은 것을 보고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노라(요3:29)”고 말한다. 예수님이 자신 보다 더 높아지는 것을 기뻐하였다. 세례 요한이 어떻게 예수님이 높아지는 것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자기 보다 더 높아지고 더 존귀해 지는 사람을 축하해 주고 기뻐해 줄 수 있을까? 한국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말한다. 이웃이 나보다 더 낫게 보이면 속상하다. 사람들을 의식하는 사람들, 사람들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나보다 높아지면 속상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잘된 모습을 보고 속상하다는 것은 자아가 안정적이지 못하는 말이다.

‘자아(self)’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따라 움직이면 불안하게 되어 있다. 내 자신이 사람들이나 환경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나 뜻에 움직여야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요즘 가정사역상담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져서 His University에서 Ph.D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아내가 Ph.D 추천서를 써주기로 하였다. 아내가 아들에게 영어를 도움을 받아 추천서의 초고를 써왔는데 아내의 생각보다 아들의 생각이 들어간 추천서였다. 추천서의 글귀 중 하나가 “그는 12년 전에는 진정한 크리스찬이 아니였다”라는 영어 문장이 내 눈에 보였고, 나는 문장을 읽자마자 화가 났다. 돌아서서 생각하니 그렇게 화 낼 이유는 아닌데 왜 화를 냈을까 하고 내 자신을 상담해 보았다. ‘나는 아들에게 열심히 잘한다고 하였는데 아들의 눈엔 아버지가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 화가 난 것이다. 나의 열심이 아들의 기대에 미지치 못한 것을 보고 나에게 화를 낸 것이다.’ 아들의 문장은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산다고 하지만 아직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살면,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경쟁을 하게 된다. 경쟁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경쟁 속에 중독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은 경쟁보다 서로 돕고 공생하라고 말한다. 어떻게 서로 돕고 공생하면서 사는가? 세례 요한은 자기의 역할을 분명히 알았기에 예수님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서로 돕고 공생하려면, 나의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면 나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있다면, 그리고 그 위치를 하늘의 뜻으로 안다면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질투하지 않고 박수를 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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