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시작

두려움의 시작
요한복음 6장 16절~21절

요한복음 6장 19절,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사람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있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사업이 망할까봐 두려워한다. 건달들은 두려워서 주먹을 쓴다. 어린 아이는 혼자 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른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자기가 원한 것을 이룬 어른은 이룬 것을 잃어 버릴까봐 두려워한다.

두려움의 시작은 죄이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 시작이 되었다. 창세기3장 10절,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죄를 지어 벗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어린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도, 어른이 두려워하는 것도 죄 때문이다. 사물을 인식기 시작하면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게 되고, 나를 바라보면서 무의식 중에 있는 죄가 두려움을 만든다.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유아들은 자기를 보호해 주는 엄마가 없을 때 두려움이 생긴다. 죄는 하나님이 없음이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못할 때 두려움은 시작이 된다. ‘벌거벗었다’라는 말의 뜻은 죄중에 있는 너를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의미이다.

두려움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생물학적인 ‘신호등’이다. 두려움이 없으면 육체를 보호하지 못한다. 두려움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나방과 같이 불에 뛰어 들것인가? 두려움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은 이제 자기의 육체는 자기가 보호해야만 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 이제 혼자 벌거벗은 채로 남아 있게 되었다. 암흑 속에 혼자 있는 두려움아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감옥에서 가장 큰 형벌은 빛이 들지 않는 곳에 혼자 감금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어둠이고 또한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혼자 있게 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혼자였다. 혼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였다. 요한복음 6장 17절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지 아니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제자들의 두려움의 시작은 육체를 지키기 위하여 어둠에서 오는 두려움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사실 그 두려움의 근원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바다 안에서 어두워서 두려워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두려움의 시작은 예수님이 없기 때문에 시작이 되었다. 자신을 보호할 분이 없고, 자신을 보호할 분이 계시지 않으니 어디로 갈지 방향도 잡지 못하고 있다.

두려움의 시작은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시작이 된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으면 어둠 속에 있고,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었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내가 지금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물어보자.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지 아는 방법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삶의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살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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