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 다른 삶

같은 길, 다른 삶
요한복음 8장 20절~30절

요한복음 8장 20절,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길’을 그리게 하는 미술 치료가 있다. 사람마다 길을 그리라고 하면 서로 다른 길을 그린다. 그들이 그린 길은 그들의 내면을 표현한다. 오솔길, 언덕길, 큰 길, 작은 길, 교차로가 있는 길, 교차로가 없는 길, 나무가 있는 길, 꽃이 많은 길 등 여러 모양의 길을 그린다. 각기 그린 ‘길’을 내담자에게 설명하게 하면 치료자는 내담자가 내면의 세계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한다.

예수님께서 “내가 간다”고 말씀하시고, 내가 가면 너희들이 나를 찾으려고 하지만 찾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대비가 되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세상에 오신 이유가 세상의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다고(요3:17) 말씀하셨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다른 말씀을 하신다; “너희들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 죽겠다.”

어떤 말씀이 예수님께서 진리인가? 어떤 말씀이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인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지금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너희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 너희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도 예수님을 믿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싶어 하셨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믿음을 가지고 산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시험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고난을 주는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각자가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어떤 하나님이 참 모습일까? 하나님께서는 믿음대로 나타나신다. 무서운 하나님이면 무서운 하나님으로,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고난의 하나님은 고난의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요즘은 ‘사랑의 하나님’이 강조되는 시대이다. 사랑은 무조건 주기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를 바르게 인도하는 사랑이 있다. 사랑에는 ‘당근과 채찍’이 있다. 즉 사랑은 무조건적인 헌신과 바르게 인도하는 징계가 포함이 되어 있다. 징계가 없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한다(계3:19).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면 ‘자신의 하나님’은 무조건 자신을 용서해야 되지만, 다른 사람은 무조건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는 마음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마음의 경향성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한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사람의 티끌을 보지 말고 내 눈에 들보를 보라(마7:4)고 말씀하신다.

나를 생각하는 마음의 경향성은 나의 하나님은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지불하는 대가는 ‘나의 기쁨’에 따라 사는 삶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값을 지불하여야 한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지 ‘내 자신’에게 조용히 물어 보면 된다. 나의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나의 기쁨’을 쫓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쁨’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나의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나 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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