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자, 곁에 있는 자
요한복음11장17절-44절
요한복음11장25절~26절, “2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절: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한국에 있을 때 아내와 함께 어느 커피숍에 들어갔다. 나는 아이스 그린라테, 아내는 아이스 카페 라테를 주문하였다. 아내가 주문한 아이스 카페 라테가 나오지 않고, 그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전에 부산에서 아이스 티가 나오지 않고 핫티가 나와서 아이스티를 주문했다고 하니 주인이 영수증을 보라고 한 것이 기억이나서 내가 영수증을 확인해야 하는데 확인하지 않아서 죄송하다고 말하였더니, 종업원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이스카페라테로 바꾸어 줄 수 없다고 말하였다. 나는 아이스카페 라테라고 분명히 주문했는데 주문을 받는 사람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주문을 받았고,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종업원은 아이스 아마레카노를 아이스 카페라테로 바꾸어 주었다.
오늘도 미국에서 한국에서 있었던 일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컴퓨터 밧데리가 다 되어서 밧데리를 사러 컴퓨터 수리점에 갔다. 밧데리 가격을 물어보니 컴퓨터 수리점에 계시는 직원이 40~50불이라고 말했다. 20불을 예치하고 밧데리를 주문하였다. 정확한 컴퓨터 모델을 알려달라고 해서 집에 와서 직원과 통화하고, 직원에게 정확한 밧데리 가격을 물었다. 그는 정확하게 50불이라고 말했다. 나는 가게에서 40불에서 50불 사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직원에게 물었더니, 직원은 45불에서 50불 사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보다고 말하면서 밧데리는 3일 후에 오느냐고 물었다. 그때 수리 직원은 자기는 3일 후 온다고 말한 적이 없었고, 3일에서 5일 걸린다고 말했다고 했다. 나는 분명히 수리 직원이 3일 후에 온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말을 한다.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 또한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거침 없이 말한다. 특히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종업원은 자기를 변명하고, 손님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운다. 이런 이야기를 내 아내에게 하였더니, 내 아내는 세상이 각박해서 그렇다고 한다.
오늘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 하신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살고,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이 ‘그리스도 주’인 것은 믿지만 죽은 오빠 나사로를 살리실 예수님이라고 믿지는 못하였다. 신앙 깊은 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마리아가 들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아래에서 울면서 “오빠 나사로가 살았을 때 예수님이 왔으면 살았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하지만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이라는 것은 믿지 못하였다.
아무도 나사로가 살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경청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여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각자의 생각과 뜻이 자기를 채웠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였다. 한발 더 나가서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지 못하였다고 군중들은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아무도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 날 것이라고 믿지 않았지만 그들은 예수님 곁에서 죽은 나사로는 다시 사는 것을 보았다. 이와 같이 우리도 아무리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도 예수님 곁에 있다면 살아 있는 말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 곁에 있어야 기적을 본다.
나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떠나는 자인가? 아니면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도 예수님 곁에 있는 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