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동기, 선한 결과
요한복음11장 45절~57절
요한복음11장 50절~52절, “50절: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절: 또 그 민족만 위할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어수선하다. 곳곳에서 지진과 스나미, 전쟁과 기근이 멈추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자기만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들어내기를 좋아한다. 험악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심히 염려가 된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많은 표적을 행하는 것을 그대로 두면 예수님을 믿을 것을 두려워하여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죽이자는 말이다. 가야바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동기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하나님을 존경하여 두려워 떠는 것은 예배를 위한 두려움이지만, 지금 가야바가 느끼는 두려움은 육신을 지키려는 보호본능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가야바의 지위를 지키지 못하면 육신의 욕구도 무너진다는 예견되는 결핍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육신을 지키려하는 가야바의 두려움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 되고 있다. 악한 동기도 하나님이 계시면 선한 결과로 바꾸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교회가 싸우고, 교회가 욕을 먹고 있지만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면 예측하지 못할 하나님의 선한 결과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선한 동기를 가져야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한 동기를 가진 악인을 통하여도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 놓기만 하면 된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기 보다는 성급하게 우리가 먼저 나서서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대신하고자 한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불신앙에서 나오는 행동이고, 불신앙은 육신을 앞세우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행한다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의 역할을 육신이 대신하는 교만한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선한 동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도 하지만, 악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을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선한 일로 바꿀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하다. 세상이 염려가 되지만 소망이 있는 이유는 험한 세상 속이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더 강하게 역사하실 선한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