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놀이
요한복음12장44절~50절
요한복음12장47절~48절, “47절: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절: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나에 그를 심판하리라.”
음식점에 가서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이냐?”하고 물으면 음식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음식을 선택하라고 물으면 바로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선택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있고, 선택이 쉬운 사람이 있다.
오늘 말씀에도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부터 거절하고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두 부류의 사람들의 인생의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하지 않지만, 처음부터 예수님을 거절하여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심판이 있다고 말한다.
죄를 지을 의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유사하게 들린다. 이는 세상에서 행하는 법과 다르다. 세상의 법은 죄를 지을 의도가 있던 없던 심판한다. 죄를 지을 의도가 없는 사람은 ‘과실범’으로 심판하고, 죄를 지을 의도가 있는 사람은 ‘고의범’으로 처리한다. 과실범에게 주는 혜택이 있다면 고의범보다 과실범의 형벌을 낮추어 주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려 한다. 그리고 될 있는 한 적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기 원하신다. 나를 거절한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면 나 같으면 가차없이 심판 할 터인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거절한 사람에게도 영생의 기회를 주시기 원한다.
진리와 은혜의 균형을 갖춘 예수님의 모습이다. 어떤 사람은 진리만 강조하여 옳고 그름만 따진다. 옳고 그름에 은혜가 없다. 어떤 사람은 은혜만 강조하여 어떠한 죄도 넘어간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못하다. 두 종류의 사람 모두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진리, 진리가 없는 사랑의 관계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은혜에 편에 있는가? 아니면 진리의 편에 있는가? 은혜와 진리 사이에서 끊임없는 시소놀이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