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놀이
요한복음13장1절~11절
요한복음13장 1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내가 부목사 생활을 할 때였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내게 “사람은 겪어 봐야 알아”라고 말하였다. 그때는 그 목사님의 말의 의미를 몰랐다. 왜냐하면 나는 말한 대로 있는 그대로 보여진 그대로의 나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산다. 이를 분석심리학에서는 페르조나라고 말하고 각자가 맡은 사회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역할에 맞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대기업에서 과장인 아버지가 있다면 집에서는 아버지의 특성, 직장에서는 과장의 특성, 교회에서는 성도의 특성을 가지게 된다. 개인은 개인이 소속된 사회의 구성원으로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을 감당해야 할 성격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가져야 할 성격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기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모습으로 보여주셨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발을 씻겨 주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자기의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글 가운데 들어가서는 안된는 글이 사이에 들어가 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13:2).” 이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신할려는 가롯유다의 발도 씻어주셨음을 의미한다.
한결같이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하기란 어렵다. 상대방에게 조금만 섭섭하게 하여도 인간 관계는 무너진다. 그런데 자기를 배신하려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를 배신하려는 사람을 그냥 둘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성격은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할 수 없음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섬김의 모습을 보이기 위함이라고 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발을 씻겨줄 때는 발을 씻기신 이유를 몰랐으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그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의미를 깨달았다. 섬김은 종이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낮은 자리에서 종을 섬기는 것이다. 주인이 낮은 자리에서 종을 섬기려면 ‘자기’가 살아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사람은 페르조나를 당연히 인정하고 있다. 물론 사회에서 살려면 사회에 맞는 역할의 특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면 뒤에 숨겨진 개인은 자신의 아픔을 상대방에게 내어 놓지 못하고, 진솔하게 그들을 대하지 못한다. 이는 페르조나는 ‘자기’를 죽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솔하고 솔직하려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의 가면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과 진솔한 만남이 시작이 되고, 주님께서 우리를 섬기기(?) 시작하실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가면놀이에서 해방되어 나를 찾는 진솔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