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인가, 종인가?
요한복음 15장 15절~27절
요한복음 15장 15절,”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나가면 두려운 것이 없다. 동네에 큰 형도 두렵지 않다. 아이보다 크고 힘이 센 어른을 만나도 든든하다. 아버지는 항상 아이의 든든한 후원자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라고 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은 “서로 사랑”하는 계명이다. 서로 사랑하기 위한 조건이 있는데 예수님의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서로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랑에 대한 의미가 달라지고 희미해지고 있다. 사랑한다는 의미를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사랑하는 조건적 사랑이나,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주신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을 말한다. 상대나 조건에 따라서 변하는 사랑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서 변하는 사랑이 아니라, 또한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사랑을 주고 받고 하는 거래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한다.
어떻게 서로 조건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 예수님에게 붙어 있으면 서로 ‘아가페’같은 사랑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서로 아가페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요15:16)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선택한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이고, 그리고 선택에는 조건이 없다. 만약 조건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서로 아가페의 사랑을 하는 택한 사람들은 세상이 그들을 미워한다고 말한다. 세상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서로 사랑한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세상이 미워해도 우리는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신다. 걱정하지 않은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기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어떤 종파에 속한 젊은 여인이 나와 성경에 대하여 나누자고 했다. 나는 목사이고 신학자라고 젊은 여인에게 말하였는데도, 그 여인은 한사코 나와 성경에 대하여 나누자고 했다. 물론 어떤 종파에서 나왔는지 알기에 나는 괜찮다고 사양을 하였다. 이 모습을 지켜 본 아내가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 믿지 않는지 그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아내의 깨달음을 나에게 전하였다.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을 사랑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말씀을 전하는지 ‘죄’를 면하기 위하여 말씀을 전하는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사랑은 자유를 주지만, 죄는 묶임을 준다. 사랑으로 예수님의 친구가 되지만, 죄는 사망의 종이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종인가? 아니면 친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