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선택할 것

오늘 선택 할 것
요한복음18장 12절~27절

요한복음 18장 27절,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예루살렘을 여행하지 못하였지만, 예루살렘을 여행하다 보면 시온산 남쪽 중턱에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다고 한다. 통곡 교회 꼭대기를 닭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갈 때, 베드로는 문 밖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다. 베드로 통곡교회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 한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교회 꼭대기에 닭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 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 체포되기 전에 예언하셨다. 예수님의 예언에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자기는 죽음까지도 예수님을 따를 것이라고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러나 베드로의 장담은 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서 거짓임이 밝혀졌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다. 그것도 한 번 부인한 것이 아니라 세 번씩 예수님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갈수록 부인의 강도가 강하여 졌다. 베드로는 한 번은 그냥 부인하고, 두 번째에는 맹세하고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저주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한다.

오늘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 장면 가운데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는 모습이 나온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심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님의 고난에는 어떠한 사람도 동참할 수 없음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누구도 죽음을 선택해서 가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여 십자가의 길로 가셨다. 십자가의 길만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갈1:4).” 사람은 죽음의 두려움 앞에 자기를 보호하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도 당당하게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다.

요즘 마지막 시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지진과 기근, 전쟁과 전염병, 특히 하늘의 징조까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불안한 상황과 고통스러운 상황에 우리는 떨 수 있다. 예수님 옆에 있으면 그 분의 당당함이 우리에게 전해지지만, 세상 옆에 있으면 세상의 불안과 공포가 우리에게 전해 질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쫓을지 아니면 어둠과 불안에서 건지실 예수님을 따를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오늘 우리는 어느 편을 선택하여 따르고 있는가? 불안인가? 당당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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