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과 화
창세기 37장 12절~24절
창세기 37장 18절~19절, “18절: 요셉이 그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절: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살다가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치기도 한다. 불행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불행이 아니라 불행을 다루는 방법이 문제가 된다. 불행을 잘 다루면 ‘전화위복’이 된다 . ‘전화위복(轉禍爲福)’의 뜻은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행을 다루지 못하면 불행은 불행으로 남아 있거나, 아니면 불행이 커져서 더 큰 불행으로 변하게 된다.
요셉의 형들이 세검으로 양을 치러 갔다. 요셉의 형들이 세검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 야곱에 대한 반항때문에 요셉의 형들은 세검으로 갔다. 세검에서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추억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면 야곱이 요셉의 형들을 걱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간 곳이 세검이기 때문이다. 세검은 야곱의 아들들, 즉 시므온과 레위가 세검 추장의 아들이 동생 디나를 강간하여, 강간에 대한 복수로 세검 사람들을 죽인 곳이 세검이다. 세검사람들이 요셉의 형들에게 복수는 하지 않을까 야곱은 걱정하고 있었다.
요셉의 형들은 불행을 잘 다루지 못하였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찾아 헤매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을 인정하지 않고, 불행을 피하여 세검으로 갔다. 그러나 불행을 피하여 갔던 그들의 길에는 더 큰 불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단에서 양을 치던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요셉의 모습을 멀리서 보았을 때 그들은 요셉을 죽이기로 마음을 합하였다. 그러나 맏형 르우벤이 요셉을 죽이는 것을 반대하여, 그들은 요셉을 죽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 속에 넣기로 하였다. 그들은 화근을 제거하기 위하여 요셉을 구덩이에 넣었다. 그러나 그들은 화근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더 큰 화를 불러왔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넣은 순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복이 아니라 더 큰 불행이었다.
우리에게 적용될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가 불행을 만날 때 불행을 피하거나 거부하면 더 큰 불행이 우리를 찾아 올 수 있다. 불행을 다루지 못하면 화가 된다. 그러나 불행을 잘 다루면 복이 된다. 불행을 다루는 법은 불행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행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불행을 다룰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불행을 인정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우리의 불행이 화가 아니라 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