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창세기 38장 1절~30절
창세기 38장 25절,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요즘 한국에서 ‘공감’을 강조한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머리로 가슴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공감은 세대와 세대사이를 잇은 다리이고, 끊어진 관계를 잇는 소통의 기술이기도 하다. 특히 상담가가 내담자의 아픔을 깊이 공감할 때 내담자의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한다.
요셉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유다의 이야기로 바뀐다. 성경은 요셉의 이야기 중간에 유다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야곱의 집에서 요셉을 제외한 다른 형제 중에 성경이 초점을 맞추어야 할 인물이 유다였기 때문이다. 성경이 다른 형제들의 이야기를 초점 맞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자녀들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약속의 자녀가 죄를 지은 후에 회개가 없다면, 아무리 약속의 자녀이더라도 성경이 말하는 대상에서 멀어지게 된다. 다른 형제들은 요셉을 팔아 넘기는 죄를 지었다. 르우벤은 그 일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죄를 지었다 (창35:22).
유다는 어떠한가? 성경은 유다와 그의 아들들이 악행을 기록하고 있다. 유다의 아들, 엘과 오난은 악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셨다. 엘은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기 때문에 여호아께서 엘을 죽였다. 동생 오난은 형의 재산을 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오난이 악하여 여호와께서 오난을 죽이셨다. 유다에게 남은 아들은 셀라 뿐이였다.
유다의 두 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성경이 기록한 이유가 무엇인가? 유다가 두 아들이 죽음으로 아버지 야곱의 슬픔을 공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다는 야곱이 요셉을 잊지 못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참을 수 없어서 아버지를 떠났다. 물론 유다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이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유다가 두 아들을 잃고 나서, 아버지 야곱의 심정을 공감하고 야곱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또한 유다 자신도 아버지 야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다가 아버지가 행한 죄에 대하여 스스로 공감하게 되었다. 유다는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유다도 야곱과 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유다가 어떻게 야곱과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가?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통하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다는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어야 하지만, 셀라가 죽을 것을 염려하여 유다는 의도적으로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았다. 다말은 형 엘의 자손을 이어야했다. 그래서 유다가 양털을 깎으러 친정 가까이에 왔을 때, 다말은 창녀로 위장하여 유다와 동침을 하였다. 유다가 동침한 여인이 창녀가 아니라 다말인 사실을 알때, 유다는 자신이 아버지 야곱과 같은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다(창38:26).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메세지를 전하여 주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공감은 가정에서 시작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정에서 서로 공감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소통을 시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