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지름길
창세기 40장 1절~15절
창세기 40장 13절,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한 사람은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였고, 다른 사람은 떡 굽는 자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하루밤에 꿈을 꾸는데 각기 그 내용이 달랐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꿈을 꾸었지만, 두 사람 모두 꿈을 꾸고 난 후에 근심을 하였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근심을 하면서 산다. 근심의 내용을 보면 70% 이상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근심이다. 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로 인한 근심,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범위 안에 있는 근심이 아니라 내 능력 범위 밖에 있는 근심, 예를 들면 일어나지 않은 자동차 사고에 대한 근심, 지금 있는 직장에서 앞으로 떠나게 되면 어떻게 하나에 대한 근심 등이 내 능력 범위 밖에 있는 근심이다.
근심하고 있는 근심이 해결 할 수 없는 근심을 알 때 나타나는 두 가지 반응이 있다. 하나는 포기형, 다른 하나는 맡김형의 반응이다. 포기형은 해결 할 수 없는 근심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더 힘들어하는 반응을 보이는 반응이 포기형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맡김형 반응은 해결할 수 없는 근심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가슴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반응을 나타낸다.
해결할 수 없는 근심을 직면(confront)할 때, 두 가지 유형의 반응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포기형은 환경이나 사람이 자신의 통제 안에 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근심을 바라보고, 자신의 무능력함 때문에 더 힘들어하고 답답해 한다. 그러나 맡김형은 사람이나 환경을 통제하기보다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근심을 직면할 때, 자신보다 더 능력이 많은 그 분께 맡기기 때문에 속이 후련해진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술 맡은 관원은 사흘 뒤에 감옥에서 풀려나 원래의 자리로 회복되는 꿈이라고 해석해 주었고, 떡 굽는 관원장은 사흘 뒤에 감옥에서 목이 달리는 꿈이라고 해석해 주었다.
창세기 40장의 주인공은 요셉이지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이 아니다. 오늘 말씀은 요셉이 감옥에 들어간 이유를 은연중에 설명하고 있다. 요셉이 감옥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술 맡은 관원을 만나게 하기 위함이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을 만나지 않았다면 애굽의 왕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종의 신분을 가진 요셉이 왕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지름길이 감옥이었다. 요셉에게 감옥은 ‘화’가 아니라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적용해야 할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의 인생이 감옥처럼 갇혀서 살고 있다면, 그 감옥은 ‘화’가 아니라 ‘복’이다. 감옥 같은 인생이 복인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인생의 감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