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와 대적자

수용자와 대적자
창세기 43장 1절~15절

창세기 43장 8절~9절, “8절: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절: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가 있다. 어머니의 태도가 달라져서 아이가 달라지기도 하고, 아이가 교육을 통해서 달라지기도 한다. 오늘 말씀을 찬찬히 읽어보면 유다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유다는 아버지 ‘이스라엘’에 대하여 대항적인 아들이었다. 아버지 이스라엘의 옛 이름은 야곱었다. 야곱의 뜻은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과 “속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유다는 속이는 아버지를 증오하였고, 아버지처럼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유다는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싶었다.

유다가 아버지를 떠나 혼자 살았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 유다는 그의 아들 ‘엘’과 ‘오난’을 잃었다. 하나님이 ‘엘’과 ‘오난’ 데리고 가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그들을 데리고 간 이유는 그들이 악하였기 때문었다. 그리고 막내 아들 ‘셀라’만 유다에게 남아 있었다. 유다는 ‘셀라’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맏형 엘의 아내 ‘다말’에게 셀라를 주기로 하였는데 유다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약속을 지키기 기다리던 ‘다말’은 시아버지가 약속을 지킬 의지가 없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유다가 딤나로 올라갔을 때, ‘다말’은 창녀로 위장하여 유다와 동침하여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유다는 다말의 일로 깨달은 바가 컸다. 그리고 유다는 다말과의 일이 있은 후로 아버지 이스라엘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는 유다가 아버지와 화해했음을 의미하며, 아버지를 증오하는 마음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유다는 아버지 마음을 제일 잘 이해하는 아들이 되었다.

오늘 말씀은 유다가 막내 아들 ‘베냐민’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아버지를 보호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다는 자기의 소중한 아들을 담보로 하여 베냐민을 보호하겠다고, 아버지에게 약속한다. 아들을 잃어 본 유다이기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하였고, 공감하였다.

아버지를 대적하던 유다가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유다로 바뀌었다. 아버지를 지지하는 유다는 하나님에게 큰 약속을 받게 되었다. 그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약속이었다. 유다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유다가 대적자에서 수용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도 우리의 아픔과 가족들의 보기 싫은 모습에 벽을 쌓는 대적자가 아니라 수용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간간이 들리는 부모와 자녀들간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대적자에서 수용자로 바뀐다면 우리 주변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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