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용서

화해와 용서
창세기 50장 15절~26절

창세기 50장 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014년 10월 27일(월)에 창세기를 시작하였다. 2015년 4월8일(수), 오늘 그 창세기 여정이 끝난다. 창세기를 시작할 때 제목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창세기의 마지막 제목을 뭐라고 정할까 고민이 되었다.

야곱이 죽자 야곱의 형들은 요셉에게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하였다. 형들은 요셉에게 종으로 판 사건에 대한 용서를 구하였다. 형들이 요셉에게 용서를 구하였다는 기록은 이전에는 없었다. 창세기 45장에 요셉과 그의 형들이 입맞추고 안고 울었다는 기록은 있어도, 형들이 요셉에게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말한 기록은 없다.

용서의 사전적 정의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주는 것”이다. 화해의 사전적 정의는 “당사자가 서로 양보하여 당사자간의 분쟁을 끝낼 것을 약정함으로 성립된 계약을 말하며 재판외 화해와 재판상 화해있다”이다. 사전적 정의로 용서와 화해를 유추 해석한다면 용서로 당사자간의 분쟁을 끝내지는 않는다. 즉 용서를 하여도 서로의 갈등은 남아 있다. 서로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화해이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과 화해하기를 원하였다. 형들은 가해자였고, 요셉은 피해자였다. 형들이 요셉에게 원하는 것은 화해였다.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하였던 형들에 대한 마음의 앙금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과의 화해를 하였다. 요셉이 형들과 화해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아버지의 유언때문이었다. 야곱이 형들을 통하여 요셉에게 전한 말은, “너의 형들이 너에게 몹쓸 일을 저질렀지만, 이제 이 아버지는 네가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주기를 바란다”는 유언이 요셉과 형들의 갈등을 끝낼 수 있었다(창50:17).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보다도 화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셨음을 요셉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형들이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셨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창50:20).”

창세기는 ‘새로운 시작’으로 시작해서 ‘용서와 화해’로 창세기를 끝낸다. 인간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책이 창세기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전에 죄에 대한 심판은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대신 받으셨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오늘 우리에게 적용될 말씀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서로 화해하기를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이 화해하였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원수같은 사람과 화해하기를 바라신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