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슬픔 속에서
요한복음 11장 33절
요한복음 11장 33절,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주님은 마리아와 함께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해 하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죽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좀더 일찍 나사로에게 오셨더라면, 오빠가 살았을 것”이라고 예수님께 말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나사로가 지금 다시 살 것’이라고 말했지만, 마르다는 ‘마지막 부활의 때에 나사로가 다시 살줄’을 안다고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하고 마르다에게 물었더니,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인줄 내가 믿나이다(요11:27)”라고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예수님이 지금 나사로가 살 것이라고 마르다에게 말했지만,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다른 대답을 하였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잘못 알아들어도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을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롬5:8).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렸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는 죽지 않았습니다(요11:32)”라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원망에 화를 내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녀를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이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요11:33).”
예수님이 마리아와 함께 우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마리아의 연약함과 마리아의 고달픈 삶을 아시고 우셨다. 물론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나사로가 살 것이고, 나사로가 살면 마리아의 눈물은 닦일 것을 알고 있었다. 마리아에게 ‘부활의 기쁨’이 찾아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마리아가 겪고 있는 현재의 아픔과 고통에 함께 눈물흘리셨다.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의 슬픔을 그대로 주님께 토해낼 때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그냥 두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의 슬픔에 함께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