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부인과 십자가

자기부인과 십자가
누가복음 9장 51절

누가복음 9장 51절,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께서 하늘에 들림을 받을 날이 가까이오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굳게 결심을 하였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알고 계셨다. 예루살렘에 가면 조롱과 멸시, 배반과 모욕, 가시멸류관과 침 뱉음, 십자가에 못박힘과 창에 찔림을 받으리라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까지도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고, 존귀함을 받아야 할 마땅한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존귀함을 버리고 가장 낮은 곳,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곳으로 가셨던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죄인되었을 때 죄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이를 J.C 라일은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완전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마태복음 20장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자기희생 혹은 자기부인의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죽으시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유는 모든 사람의 죄를 씻기 위하여 죽으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자기부인’과 ‘십자가’는 분명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자기사랑이 예수님 사랑보다 큰 것이 ‘자기부인’이다. ‘십자가’는 죄인을 ‘대속의 길’로 인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져야하는 십자가는 날마다 새로운 십자가이다.

죄가 많은 곳에 가면 힘이 든다. 힘이 들고, 때로는 온 몸이 부서지게 되는 장소가 ‘죄가 많은’ 곳이다. 그곳에 생명을 흐르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만, 그곳에서 견디고, 참고, 모욕을 받고, 심령이 상하는 일은 ‘우리의 십자가’이다. 물론 십자가는 우리가 결정한 십자가가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이어야 한다. 주님이 주신 십자가와 우리가 결정한 십자가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주님이 주신 십자가는 ‘죄인’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지만, 우리가 결정한 십자가는 ‘죄인’이 죽기를 원한다(눅9:54; 19:10)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가 모욕을 받고, 마음이 상하더라도 죄인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죄인의 자리까지 나가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 죄인의 자리에 나가는 일이 ‘자기부인’이고, 상한 마음과 모욕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 우리가 날마다 져야 할 ‘십자가’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