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네 단계

사랑의 네 단계
요한1서 4장 7절~8절

요한1서 4장 7절~8절, “7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 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절: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한다면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한1서 8절 후반부에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바로 사랑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하나님보다 다른 어떤 존재나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신자로써 합당치 않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

중세 교회의 위대한 지도자 중에 버나드 끌레르보(Bernard of Clairvaux)란 지도자가 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함에 대하여”란 글을 썼고, 그의 글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네 단계로 나누었다; 사랑의 1단계는 자기를 위해여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의 2단계는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도, 사랑의 3단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마지막 사랑의 4단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의 1단계와 2단계는 아직도 자기애(自己愛: 자기를 사랑함)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의 1단계와 2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기를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사랑의 2단계가 1단계보다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은 2단계에서 하나님을 알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2단계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단계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랑의 3단계와 4단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의 3단계는 하나님과 자기가 온전한 연합을 이루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한다. 마지막 사랑의 4단계는 거룩한 연합에 있는 ‘성자’의 반열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온전한 연합을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를 비운다. 자기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를 한다. 즉 4단계의 사랑은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보여드린 사랑과 비슷하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

버나드 끌레르보는 사랑의 4단계까지 이르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4단계가 이 세상에서 온전히 실현 가능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사랑의 3단계에 이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랑의 3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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