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김 종길-
겨울비 후둑이는 저녁 어스름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일 년에 한 두번 얼굴을 맞대는
옛 동기생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동기생들의 반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지금 십여 명이 서울에 살고 있지만
한 두 사람은 연락이 닿지 않고
한두 사람은 병석에 갇혀 있어
모처럼 모인다 해도 반밖에 나오질 않는다.
그러나 가장 허물없는 사이가 그들이다
지금은 백발에 주름잡힌 얼굴들이지만
모이면 모두 육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
버릇없는 중학생들이 되어 즐겁기만 하다.
망년회란 한 해를 잊자는 것인가
아니면 나이를 잊자는 것인가
아니면 그 두 가지를 다 잊자는 건가
겨울비 후둑이는 저녁 어스름
늙은 동기생들을 만나러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