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각을 넘어서
창세기 29장 21절~35절
창세기 29장 30절,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야곱이 라헬을 14년 일한 뒤에 얻은 것이 아니라, 레아와 일 주일의 혼인 기간이 끝나고 라헬을 얻었다. 그리고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하여 외삼촌 라반을 위하여 7년을 더 일하였다. 레아는 결혼 한 지 일 주일만에 남편에게 소박을 맞은 격이 되었다. 야곱은 레아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버지 라반이 야곱을 속이기 위하여 딸 레아를 이용한 일과 어머니 리브가가 아버지 이삭을 속이기 위하여 야곱을 이용한 일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야곱이 레아를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기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창29:31).” 이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는데 자녀를 낳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의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레아가 자녀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대답할 수 있다.
야곱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을 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시작했다. 야곱이 7년 동안 라반을 위하여 일한 사건이며, 7년의 기간이 끝이 났는데 라반에게 속아서 다시 7년 동안 일을 더하게 되는 사건이며, 레아를 아내를 맞이한 사건이며, 라헬이 자녀가 없는 일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야곱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니, 하나님의 전지 전능함과 능력이 무엇인지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던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면 그 상황을 달리 볼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고 하나님께 불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 안에 갇혀서 우리의 문제를 보면 고통과 한 숨 뿐일 사건들이, 우리의 시각을 넘어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