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자유
창세기 42장 18절~38절
창세기 42장 20절, “너희 막내 아우를 애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부정적인 감정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부모가 재정적으로 자녀를 충분히 돕지 못하였다는생각이 들면 자녀들에게 미안해 한다.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던 자녀가 자라서 부모가 되면 부모에게 미안해한다. 부모 자녀사이에 서로 미안한 감정이 들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였지만, 그들 자신이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상한 감정이 쌓이게 되면 폭발하게 된다. 폭발한 감정은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서로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고, 상대의 마음을찌르는 이유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성때문이다. 인간의 죄성은 수치심, 열등감, 교만, 자기비하, 시기심, 질투, 미움 등으로 표현이 된다.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은 죄성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죄때문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요셉의 형들도 그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묻어 두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집트로 팔아버린 사건을 합리화하였다. 요셉의 교만과 거만은 그들을 참을 수 없게 하였고,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요셉에게 벌을 주었다고 스스로 합리화 하였다. 만약 형들이 ‘죄’를 합리화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죄책감’때문에 살 수가 없다.
요셉은 형들이 마음 속 깊이 묻어 놓았던 ‘죄책감’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였다. 요셉이 형들을 이집트에 정탐하러 온 정탐꾼이라는 죄목을 씌워서, 그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형들이 감옥에 있는동안 그들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인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죄책감’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한 요셉의 결정적인 말이 있었다. “당신들이 정직한 사람이면, 당신들 형제 가운데서 한 사람만 여기에 갇혀 있고, 나머지는 나가서, 곡식을 가지고 돌아가서, 집안 식구들이 허기를 면하도록 하시오. 그러나 당신들은 반드시 막내 아우를 나에게 데리고 와야 하오. 그래야만 당신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며, 당신들이 죽음을 면할 것이오(창42:19-20, 표준새번역).”
요셉의 말을 들은 형들은 “그렇다! 아우의 일로 벌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아우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 때에, 그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가 아우의 애원을 들어 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가 이제 이런 괴로움을 당하는구나(창42:21, 표준새번역).”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그들의 범죄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 아니였지만, 그들은 그들의 범죄때문에 그러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는 인과응보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좋은 마음을 가지면 좋은 일이, 나쁜 마음을 가지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인과응보의 사고를 넘어야 죄에서 해방이 된다. 인과응보의 사고 위에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하여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받은 벌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