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고 싶다

소통하고 싶다
요한복음 1장 35절~42절

요한복음1장 37절,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걸어 다니심을 보고 제자들에게,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듣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다.

어떻게 하면 세례 요한의 말에 제자들이 ‘토’를 달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을까? 세례 요한과 제자들이 어떠한 관계로 맺어져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선생님이 말을 할 때 제자가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선생님이 제자에 대한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영향력을 주려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제자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선생님이라면 그 영향력은 더 클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것을 알았다. King James에는 “the Lamb of God, which taketh away the sin of the world,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나는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서로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 통하는 사이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사이었다.

요즘 한국에는 소통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이 되고 있지 않다는 사회적인 모습을 말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 형과 동생, 언니와 동생, 선생님과 제자 사이가 서로 소통하기에 너무 먼 사이가 되고 있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상호간의 관계가 무너지고, 무너진 상호 관계는 사회를 암울하게 이끌어갈 것이다.

어둠을 밝히는 ‘소통’이다. 소통은 ‘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명확하게 알아야 소통이 된다. 세례 요한은 ‘나는 광야에 외치는 소리’라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예수님도 ‘세상에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서로의 소통을 이룰 수 있다. 사회에 소통이 되고 있지 않다는 뜻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목사인 나도 소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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