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꼬 없는 찐빵

앙꼬 없는 찐빵
요한복음 5장 10절~18절

요한복음 5장 10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다. 그리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분명한 가치관이 없다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옳은 것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일 된다.

한국은 국회에서 법을 제정한다. 법의 근간은 ‘법의 정신’이다. 정의가 법의 정신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의’에 대한 정의가 분명하지 않으면 또한 ‘정의’가 사라진 법의 집행이라면 법은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다.

오늘 말씀은 안식일 논쟁이다. 십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하고 있다. 안식일의 기본 정신은 ‘안식’ 즉 ‘쉼’을 통하여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람을 ‘거룩’하게 하기 보다 ‘쉼’에 우선시 두었다. 법의 정신이 사라지고 법의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이다. 거룩이 없는 쉼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또한 쉼은 거룩을 위하여 행해져야 한다.

과거의 유대인이 행하였던 ‘쉼’에만 우선시 두었던 일들을 교회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전통이 성경보다 우선시 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있다. 이러한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빌린 ‘사람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교회라면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고, 모든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반응하는 교회이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알 수 있는가?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석하여야 ‘하나님의 뜻’에 반응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유대인은 예수님께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박해를 한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에 대하여 화를 내고 핍박하였다. 사랑이 없는 율법, 예수님 없는 율법은 더 이상 율법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율법의 기본 정신인 사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행동에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를 낸다.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함께 하면 ‘정의’가 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도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다수’가 옳은 사회가 되었다. 어떤 때에는 소수의 말에 경청해야 할 때가 있다. 소수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다수’는 민주주의 정신을 잃어버린 앙꼬 없는 찐빵의 모습이다. 민주주의는 ‘백성 전체’가 주인이지 ‘백성의 다수’가 주인인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여러분의 삶은 어떠한가?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삶은 앙꼬 없는 찐빵일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의지, 감정이 성경에 부딪쳐 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앙꼬의 맛을 보지 못하는 찐빵을 먹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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