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래 흐르는 물

마음 아래 흐르는 물
요한복음10장 22절~39절

요한복음10장32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요즘 한국은 ‘소통’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소통이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하려면 어떻게 할까? 일반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의 뜻이나 생각은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서로 말이 통하려면 어떻게 할까?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너희들에게 여러 선한 일들을 너희에게 보였는데 그 중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고 하느냐?(요10:32)”하고 물으신다. 유대인들은 “우리는 너(예수님)를 선한 일로 돌을 치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을 한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선한 일을 하셨는데 선한 일을 본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선한 일로 인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행하는 선한 일의 동기가 서로 달랐다. 예수님께서 선한 일을 하시는 동기(이유)는 유대인을 불쌍히 여겼기(사랑) 때문이고, 유대인들이 선한 일을 하는 동기는 ‘나’를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생의 자랑)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선한 일의 동기에 대하여 의심하였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싶어서(자기를 들어내고 싶어서)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유대인들은 생각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가진 잘못된 선한 동기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싶으셨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유대인)을 신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하고 유대인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들 스스로가 자랑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귀하게 여기고,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를 신으로 나타내고 계시다”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유대인들이 가지고 선한 일에 대한 잘못된 동기를 바로 잡고자 하셨다.

같은 예수님을 보아도 마음의 동기에 따라 예수님이 달라 보인다. 같은 성경을 읽어도 마음의 동기에 따라 말씀이 칼날이 되어 마음을 쪼개기도 하고, 마음이 말씀을 삼키기도 한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생각과 뜻이 통하려면 마음에 소원이 같아야 한다. 마음 밑바닥에서 움직이는 욕구가 다르다면 서로 소통할 수 없다.

마음 아래 흐르는 물은 어떤 물인가? 그 물에 따라 예수님과 소통할 수 있기도 하고, 예수님과 벽을 쌓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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