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잊을 일

오늘 잊을 일
요한복음 19장 17절~30절

요한복음19장 30절,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어제 아들에게 한 장의 생일 카드를 받았다. “가끔 내가 아빠 닮은 모습이 놀랍지? 나도 그래. 아들인 걸 어떻게 ㅋㅋㅋ, 매번 조언 해 줘서 고맙고. 흘려서 말해도 나는 가슴 깊이 다 새겨 듣고 있어…(중간 생략)…아빠는 벌써 최고의 아빠니까 내가 더 바랄게 없네.” 아들의 카드가 내게 격려가 되고 힘이 되었다. 나와 아들이 생일이 같은데 나는 아들의 생일에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였는데, 아들은 나를 위하여 카드에 100불을 넣어서 책값으로 유용하게 쓰길 원한다는 글과 함께 내게 카드를 주었다. 아들에게 생일편지를 받아보니 “주님 귀한 아들과 딸을 네게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말이 하나님께 절로 나왔다.

세상을 사는데 순례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피난민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순례자는 자기가 원해서 떠나는 사람이고, 피난민은 환경에 의해서 밀려나는 사람이다. 순례자는 가진 것을 나누며 살지만, 피난민은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한다. 피난민은 많은 것을 가져도 감사가 없지만, 순례자는 작은 것에도 감사한다.

오늘 예수님께서 순례자의 삶을 마치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고 말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승리한 믿음의 선배를 바라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본다. 조금 가지면 더 가지려고 하고, 조금 올라가면 더 올라가려고 하고, 조금 내려가면 주님을 원망하고, 시작은 주님을 위한다고 시작을 하였지만 끝은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일들이 교회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교회에 소망을 갖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생명이 되었고,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능력이 되었고,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다.

지나간 삶을 돌이켜 보면 기쁨보다 후회 일이, 감사보다 회개할 일들이 더 많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과거를 잊고 새로 시작하시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어렸을 때에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오늘 우리가 잊을 일은 무엇인가? 아니 오늘 우리가 잊어야 시작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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