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방주

두 가지 방주
창세기7장 13절~24절

창세기7장 22절,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살아 가는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안전’이다. 집이 안전하기를 원하고, 동네가 안전하기를 원하고, 자신이 안전하기를 원한다. 안전하지 못하면 사람은 불안해진다. 불안이 오래 지속되고, 강도가 커지면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

홍수 심판으로 지면의 모든 생물들이 다 죽게 되었다. 공중의 새들도 살아 남은 생물이 없었다. 그러나 오직 방주 안에 있었던 노아와 가족, 생물들만이 살아 남았다. 수 십일 동안 비가 계속 내리고, 홍수가 나서 땅이 부서지고 갈라져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든 ‘방주’만이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여성 심리학자인 Karen Horney(카렌 호나이)에 따르면 아동기 때는 부모에 대한 적개심이 있어도 억압을 하는데 억압을 하는 이유를 무기력, 두려움, 사랑, 죄의식으로 나누었다. 무기력이란 ‘나는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의 적대감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뜻이고, 두려움이란 ‘당신이 두렵기 때문에 나의 적대감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의미이고, 사랑이란 ‘당신의 사랑을 잃어버릴까봐 적대감을 억압할 수 밖에 없어요’란 호소이고, 마지막으로 죄의식은 ‘당신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적대감을 억압할 수 밖에 없어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적개심을 억압하면 부정적인 성격의 발달로 이어진다. 적개심은 안전이 무너지기 때문에 생기는 자기 방어기제이다. 즉 ‘안전’이 흔들리면 부정적인 성격 발달로 이어진다. 대홍수 속에서 죽어가는 생물을 보면서 노아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방주 안에 있으면서 방주가 과연 안전할까 하는 ‘안전에 대한 의심’은 없었을까? 창세기 9장에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는 모습은 노아의 불안이 부정적인 성격으로 이어졌다는 반증은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안전한 방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우리는 불안해 하지는 않은지 돌아 보아야겠다. 안전한 방주에 있으면서 불안해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주님의 방주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방주가 문제이다. 주님의 방주가 무너져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방주가 무너져서 ‘불안’하게 된다. 마음의 방주가 무너진다면 예수 그리스도 방주는 마음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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