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주는 은혜

두려움이 주는 은혜
창세기 14장 17절~24절

사람들은 걱정을 달고 산다.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면서 좋은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영주권이 없으면 영주권이 없어서 걱정을 하고, 영주권이 있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아브람은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으로부터 롯을 구하고 나서 걱정과 두려움에 쌓여 있었다. 한 지방에 왕과 그의 연합군을 쳐부수었으니 그들이 언제 아브람을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관계 지향적인 아브람이 앞뒤 구분 없이 롯을 구하겠다는 생각에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을 공격하여 롯과 그의 가족, 친척과 재산 모두를 되찾아 왔지만, 이제 아브람은 연합군의 보복이 두려워졌다.

법정에 증인을 선 증인들은 범인으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다. 그래서 나라마다 증인 보호제도가 있다. 법정에서 피의자가 범인이다라고 말하는 증인을 보호하는 제도이다. 증인을 보호하는 이유는 피의자가 피고인이 되어 범인으로 확정이 되면, 범인으로부터 증인이 해를 당하지 않도록 국가에서 증인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쌓여 있던 아브람에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나타났다. 어떤 신학자들은 멜기세덱이 ‘인자’의 현현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나타나신 현상을 종종 기록하고 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아서 풀무불에 던져졌다. 풀무불에 ‘세 사람’이 던져졌는데 ‘네 사람’이 풀무불 속에 있는 것을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신하들이 보았다. 느부갓네살 왕은 “네 사람이 불 가운데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단3:25)”하고 소리친다. 어떤 구약 신학자들은 ‘신들의 아들’을 인자의 현현이라고 해석한다.

아브람은 멜기세덱을 만나 아브람이 얻었던 전리품 가운데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 드렸다. 그리고 아브람은 소돔 왕에게 “소돔의 것들은 소돔으로 돌려 보내겠다”고 말하고, 소돔의 것들은 소돔에게 돌려 주었다. 아브람은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나서 더 이상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의 침입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고, 소돔의 것을 소돔에 돌려 보냄으로 소돔 왕의 연합군과도 친하게 진할 수 있었다.

우리도 살다 보면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보를 때가 있다. 두려움은 걱정과 근심을 낳는다. 걱정과 근심으로 불안할 때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그 분께 드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예수님께 드리면 우리의 걱정과 근심은 사라진다.

예수님을 잘 모르거나 성경의 뜻을 모를 때는 걱정과 근심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드린다는 것은 ‘걱정과 근심’이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마음으로 계속해서 예수님께 드리는 행위를 반복(걱정과 근심이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우리의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예수님이 주시는 더 큰 놀라운 은혜를 맛보게 된다는 말씀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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