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험

불시험
베드로전서 4장 12절~19절

베드로전서 4장 12절~13절, “12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절: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들을 연단하려는 불시험이 있다고 베드로는 말한다. 초대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를 불질렀다고 비난을 받았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 궁의 정원을 밝히는데 살아 있는 횃불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베드로는 지방관리들도 로마 황제의 본을 따라서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불로 굽는 일을 하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소아시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불로 받는 박해를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였다(Bible Knowledge Commentary, 60 참조).

우리가 받는 불시험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으로 부터 받는 비난들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까닭없는 누명을 쓰기도 하고, 어떤 그리스도인은 악한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짖눌림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불시험에는 세 가지 유익이 있고 성경은 말한다. 첫째, 불시험은 우리가 정욕에 따라 살지 않도록 한다(벧전4:1-2). 불시험은 하늘의 상급이 있다(벧전4:12-13). 마지막으로 불시험은 믿음을 자라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벧전4:19).

우리에게 불시험이 없으면 좋은 일이지만, 불시험이 없으면 우리의 영은 자라지 않는다. 우리의 영이 자라려면 불시험을 지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불시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기도

나무들의 기도
-용 해원-

폭풍우가 몰아치고
견딜 수 없이 흔들릴 때에도
생명력 있게 자라게 하소서

앞뒤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서도
곧게 곧게 자라게 하소서

해 진 후 어둠 속에서
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순간에도
대지 깊이 뿌리 내리고
물기를 빨아들여 촉촉이 젖게 하소서

초록이 빛날 아침을 기다리며
생명력이 넘치게 하소서
고통은 축복의 과정임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하소서

오직 한마음으로 자라나게 하소서
꽃 피고 열매 맺는 날을 위하여
견디게 하소서

기다림을 배우게 하소서
꽃 피고 열매 맺는 그 날
기쁨으로 활짝 웃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종말의 때에 가져야 할 세 가지 태도

종말의 때에 가져야 할 세 가지 태도
베드로전서 4장 7절~11절

베드로전서 4장 7절, “만물이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종말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은 넘친다. 초대교회의 신자들도 종말에 대한 소망(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현재의 신자들도 같은 소망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종말을 대하는 태도는 초대교회 신자와 현재의 신자가 달라보인다. 오늘날 어떤 신자들은 종말에 대하여 과민하게 반응하는 신자들이 있다. 오늘 말씀은 종말의 때에 신자가 취해야 할 태도를 가르쳐 준다.

신자는 종말의 때에 취해야 할 세 가지 태도가 있다. 첫째, 정신을 차리고, 둘째, 깨어 있어야 하고, 셋째 기도하여야 한다. 정신을 차린다는 뜻은 세상이 말하는 가치관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번째로 깨어 있다는 뜻은 주변 환경을 잘살피고 분별하면서 살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기도한다는 뜻은 도움을 받아야 할 연약한 인간임을(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고백하는 태도를 말한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 첫번째 취해야 할 태도를 가르쳐준다. 종말이 오면 우리는 기도가 먼저라고 생각을 하는데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세상의 가치로부터 지키는 일이 먼저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취해야 할 태도는 우리는 환경을 구별해야 한다. 죄를 짓게 되는 환경이나 죄를 짓기 쉬운 환경은 피해야 한다. 그러면 종말의 때에 우리가 기도할 수 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생각 지키기

생각 지키기
베드로전서 4장 1절~6절

베드로전서 4장 1절~2절, “1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로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정신 분석학은 욕구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욕구를 누르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게 되어 신경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욕구를 누르면서 살면 언제가 욕구는 폭발한다. 욕구를 누르면 인간의 마음은 답답해지고, 마음에 병이 찾아온다. 인간은 욕구를 풀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욕구대로 살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다. 신자는 육신의 정욕에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라고 성경은 말한다.

오늘 말씀은 ‘너희도 같은 생각(마음)으로 무장(벧전4:1)’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같은 생각’이란 ‘그리스도께서 그때 우리를 위하여 육체로 고난을 받았다는 생각’을 말한다. 우리가 이와 같은 생각으로 무장하고 살아야 하나님의 뜻에 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육체의 고난이 우리가 육신에 따라 살려는 욕구를 끊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위의 생각을 굳건히 지킬 때 육신의 욕구에 따라 살지 않게 된다. 우리가 ‘생각을 지키기’ 위하여 해야 벗어야 할 행동이 있는데 음란, 정욕, 술취함, 향락, 우상숭배의 행동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을 지키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우리가 서로가 뜨겁게 사랑하여야 하는 일이다.

대사(大使)의 조건

대사(大使)의 조건
베드로전서 3장 13절~22절

베드로전서 3장 13절~14절, “13절: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절: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신자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해할 사람이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나 신자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두 말씀을 읽을 때 두 말씀이 서로 상충되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어떻게 고난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면 아무도 해할 자가 없다는 말씀은 이사야서 50장 9절의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사50:9 전반부).” 그리고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는 말씀은 베드로전서 4장 14절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벧전4:16 전반부).”

선을 행하면 아무도 해할자가 없다는 말씀과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는 말씀과 떠오른 말씀을 함께 묵상하면 그 뜻이 더 명확해진다. 그 뜻은 우리가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기에 우리를 해할 자가 없지만 그리스도로 하여 우리가 스스로 고난을 받으면 우리가 특권을 누린다고 해석이 된다(여기서 복은 ‘마카리오이’라는 Greek어로 ‘대단한 특권’을 누리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특권을 누리면 그리스도의 대사(大使)가 된다. 대사란 뜻은 ‘특명 전권 대사’의 준말이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대사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 묻는 말씀이다. 우리가 대사(大使)가 되는 조건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의지해야 그리스도 대사가 된다(벧전3:14-15절 참조). 우리가 그리스도 대사가 되면 이 땅에서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 아래 순복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악이 아닌 선으로 대하는 법

악이 아닌 선으로 대하는 법
베드로전서 3장 8절~12절

베드로전서 3장 8절~9절, “8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절: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세상은 힘은 힘으로, 한 대 맞으면 한 대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신자가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으려해도 상대가 선을 악으로 갚으면 저도 모르게 신자도 악해진다. 그래서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어떤 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기 원하는 자는 자기 혀를 악으로부터 지키며, 자기 입술로 거짓을 행하지 말라(벧전3:10절 참조)”고 한다. 미래에 소망을 가지면 신자는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욕을 욕으로 갚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신자가 미래의 소망을 갖기 위하여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고, 화평을 추구하여(벧전3:11절 참조)”야 한다. 신자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고 추구할 때 미래의 소망을 잡을 수 있다.

어떻게 신자가 악에서 떠날 수 있는가? 신자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겠다는 결단을 할 때 악에서 떠날 수 있고, 신자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선을 행하게 되고, 그리고 신자가 이웃과의 화평을 구할 때 이웃과 화평을 추구하게 된다. 즉 베드로전서 3장 11절은 신자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사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웃이 우리에게 악을 행할 때 우리는 화를 낸다. 화를 내는 이유는 우리의 동물적인 감각신경들이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적을 경계하는 모습이 화를 내는 모습으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적인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진 동물적인 모습에 대한 알아차림’은 우리가 주님이 걸으신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고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할 때 알게 된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을 깨달으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동물적인 모습은 주님의 영으로 덮히게 된다. 그때 우리는 악이 아닌 선으로 대하게 된다.

겨울 기도

겨울 기도
-마 종기-

하느님, 추워하면서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에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세상을 넘어가는 방주

세상을 넘어가는 방주
베드로전서 3장 1절~7절

베드로전서 3장 1절, 7절, “1절: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7절: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내의 행실로 남편을 구원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남편의 행실로는 아내를 구원하지 못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남편은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귀하게 여기려면, 남편은 아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남편이 아내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남편은 기도를 할 수 없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여 남편을 구원 받게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남편이 아내를 구원 받게 한다고 오늘 본문 말씀은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엡5:23,25 참조). 즉 아내와 남편이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서로 소통할 때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 말씀은 남편이 아내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말로 사용되서는 안된다. 또한 아내가 남편에게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고 명령하는 말도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순종을, 하나님이 남편에게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는 명령이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대로 아내와 남편이 서로 순종하고 사랑하면 우리 가정은 구원의 방주가 된다. 아내와 남편과 그리스도와 교회와 같이 서로 연합한다면 우리의 가정은 세상의 어떠한 거친 파도도 넘어가는 구원의 방주이자,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방주가 된다.

부당한 고난

부당한 고난
베드로전서 2장 18절~25절

베드로전서 2장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는 신자에게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없다(벧전1:19-20 참조)”라고 말한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답고, 또한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베드로는 신자에게 말하고 있다. 부당한 고난은 신자만이 겪는 일이 아니고 예수님도 겪었다고 베드로는 말하면서 신자도 세상에서 부당한 고난을 겪는다고 말한다, “예수님도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도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으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2:23).”

베드로전서를 쓴 로마시대에는 박사들, 의사들, 음악가들, 선생들, 예술가들이 전쟁 포로로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이 주인으로부터 부당하게 대우를 받기도하고, 그들의 주인은 로마법을 어겨가면서 그들을 학대하기도 했다. 부당하게 대우를 받은 그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을 위로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하는 부당한 고난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당하는 부당한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게 하고(벧전2:20 참조), 이제 예수님은 너희들의 목자가 되셨으니 너희는 안심해도 된다(벧전2:25 참조). 악한 주인으로 인하여 너희들의 몸이 상하더라도 하나님이 너희를 끝까지 보호하고 계시고 너희를 부당한 고난에서 건지신다(벧전1:5, 2:19 참조)”고 베드로는 부당한 고난을 당하는 신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오늘 말씀은 세상의 부당한 제도나 권세자들때문에 우리가 부당한 고난을 받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지 그 방법을 제시해 준다.

주님의 당부

주님의 당부
베드로전서2장 9절~17절

베드로전서2장 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는 신자들이 택한 족속이고, 거룩한 나라의 제사장이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 전서에거 말한 신자들, 즉 ‘너희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말한다. ‘택한 족속’이란 참된 신자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한다. ‘거룩한 나라의 제사장’이란 영적인 나라의 ‘영적인 제사장’을 말한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유업’을 받게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둠 가운데에서 불러 기이하고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셨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백성이 되었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받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다.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부탁하시는 일이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선을행하는 일’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선을 행한다 함은 세상의 제도나 권력때문에 우리가 고난을 당하더라도 선으로 대하라는 주님의 당부이다. 이러한 주님의 당부는 우리를 힘들고 곤란하게 만들때가 많다. 그러나 주님의 당부를 따라 행한다면 세상사람들이 달라지고 주님이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