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 자라려면

영이 자라려면
베드로전서 2장 1절~8절

베드로전서 2장 2절,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the sincere milk of the word)’을 사모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순전하고 신령한’의 뜻을 King James Version에서는 ‘sincere’로 번역하고 있다. ‘sincere’라는 뜻은 ‘순수하다’다라는 뜻으로 다른 것들이 섞이지 않는 상태를 말하고 있다.

오늘 말씀은 갓난 아이들에게 젖을 먹여 본 어머니들이 젖을 먹여 보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쉽게 이해를 한다. 갓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젖을 향하여 달려 들며, 젖을 물고 배가 다 찰 때가지 젖을 놓지 않는다. 갓난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에 다가가야 주님의 인자함을 맛보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벧전2:3).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랑하는 모습을 에베소서 4장 14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는’이 가르키는 말은 앞 절의 말인데 ‘하나님을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는 일’을 말한다.

우리가 자라라면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을 담고 있는 세상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렸던 영적 제물(벧전2:5)’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렸던 ‘영적 제물’은 무엇인가? 아들이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아버지를 신뢰하고 순종한 모습, 즉 ‘십자가의 순종’을 말한다.

우리의 영이 자라려면 세상의 거짓된 가치관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어야 한다. 우리의 영이 자란다는 뜻은 ‘말씀을 아는 지식과 믿는 마음’이 하나됨을 말한다. 우리의 영이 자랄 때는 우리가 어려울 때이다. 어려울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끝까지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끝가지 붙들고 있는지를 보면 우리의 영이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원을 향한 변화

영원을 향한 변화
베드로전서 1장 22절~25절

베드로전서 1장 22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는 뜻은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혼을 정결케 하신다”라고 King James Version은 번역한다(Seeing ye have purified your souls in obeying the truth through the Spirit unto unfeigned love of the brethren, see that ye love one another with a pure heart fervently).

베드로는 우리가 성화(sanctification)된 삶을 살기 위하여 네 단계를 거친다고 말한다. 첫째, 우리 마음의 허리를 동여 근신하는 단계(벧전1:13),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단계(벧전1:14-15), 셋째, 우리가 구원의 감격과 함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마음을 갖는 단계(벧전1:17),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우리를 정결케 하셔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벧전1:22-23) 단계를 거친다.

신학적인 용어로 ‘성화된 삶(sanctified life)’라고 말했지만 ‘변화된 삶(transformed life)’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된 삶이란 근본적인 변화를 말한다. 일반적인 변화(changed life)는 태도나 외형적인 형태의 변화를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변화(transformed life)는 본질적인 변화가 동반한 외형과 태도의 변화를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결단 할 때 성령님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이 말하는 말에 동의하면서 산다고 결심할 때에는 성령님은 우리를 도울 수 없다.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에 따라 살려는 결단을 할 때, 우리를 변화(transformation)시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어 주신다. 우리가 변화되어야 들에 꽃이나 풀과 같이 마르지 않고 영원한 존재가 된다.

두려움 없는 사랑

두려움 없는 사랑
베드로전서 1장 13장~21장

베드로전서 1장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요즘 교회는 ‘은혜’와 ‘사랑’을 외친다. 예전에는 ‘진리’와 ‘말씀’을 교회가 외쳤다. 교회가 외치는 소리가 달라지자 교회 내에 환경이나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히 교인들이 바라보는 하나님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다.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받아주는 하나님으로 교인들은 지각한다. 그리고 예전에 길거리에서 전도를 위하여 외쳤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시지 않고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나그네로 있는 이 땅에서 ‘두려움’을 가지라고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이 두려움은 강도가 칼로 사람을 위협할 때 생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강도가 재판장 앞에 있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교인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따라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말씀 기억하면 우리가 거룩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해지기 때문이다(딤전4:5).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두려움 없는 사랑은 값싼 은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난을 이길 힘

고난을 이길 힘
베드로전서 1장 8절~12절

베드로전서 1장 11절,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라.”

고난을 통하여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벧전1:8). 믿는 자들은 고난을 통하여 보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 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하게 된다. 여기서 영광이 가득한 기쁨은 무엇인가? 영광이 가득한 기쁨은 구원의 감격을 말한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충만한 기쁨으로 사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의 은혜를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cf 벧전1:10). 그들이 믿음의 선지자들이 말한 구원의 은혜를 조사하고 탐구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영광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나타나는지 알게 된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기쁨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당하는 고난 때문이다. 우리가 당하는 오늘의 고난이 언제 끝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우리 중에서 오늘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오늘을 살 바에는 빨리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다. 그러나 그 분들이 구원의 은혜를 말한 선지자들을 연구하고 조사하면 오늘 당하는 고난의 끝을 알 수 있다. 그 분들이 고난의 끝을 알게 되면 고난 뒤에 나타나는 영광을 보게 된다. 구원의 영광을 우리가 오늘 보게 되면 오늘의 고난을 이길 힘을 성령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다.

하나님의 도구

하나님의 도구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베드로전서 1장 4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믿는 사람이 받을 상속의 유업은 하늘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미래의 보상보다 현재의 보상을 원한다. 현재에 보상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장애요소가 있는데 믿는 사람들이 지금 시험으로 겪게 되는 근심이다. 사람들이 믿어서 지금 편하게 되어도 믿을까 말까 하는데 믿는 사람들은 시험으로 근심을 겪게 된다(벧전1:6).

믿는 사람들이 지금 여러가지 시험을 받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한다(벧전1:7). 믿는 사람들이 시험을 당하는 이유가 있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거듭났기 때문이고, 거듭난 우리가 산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귀들은 우리가 가진 산 소망을 빼앗으려고 우리를 시험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험을 통하여 우리가 더 존귀해지게 만드시고, 우리가 받을 하늘의 유업을 더 키우신다.

우리가 시험을 당하여 지금 근심하고 있지만 성경은 시험을 당해도 우리가 근심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벧전1:5). 우리가 시험을 당해 근심해야 할 일이 있다면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연약한 믿음은 우리를 근심하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연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산 소망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당하는 시험은 산 소망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다.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해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해
베드로전서 1장 1절~2절

베드로전서 1장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사도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에게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은 너희들을 이미 아셨고, 성령을 통하여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하셨고, 너희들을 순종하게 하셨고, 너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선택받게 하셨다.” 나그네는 정한 나라도 없고, 정하여 살 곳도 없이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남유다를 멸망한 후에 나라 없이 여기 저기 떠돌아 다녔다. 떠돌아 다닌 나그네에게 남아 있는 소망이 있다면 메시아가 오시면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서 정착하여 사는 일이다.

베드로는 메시아가 나그네에게 오셨고,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나그네들에게 말한다. 눈에 보이는 땅에 정착하지는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하늘에 정착하였다고 베드로는 나그네들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우리에게 주님은 약속하신다,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아 선택을 받았고, 선택 받은 너희는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병신년은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우리를 선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은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넘치도록 주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시는 주님

기억하시는 주님
시편 119편 49절~50절

시편 119편 49절~50절, “49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50절: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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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상의 119편 시편 기자는 주님이 우리를 기억하고 소망을 주시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나이다.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것이니이다(시 119:51-56).”

주님이 우리를 기억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이루어 주시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하고 축원합니다.

마음의 소원

마음의 소원
베드로전서 4장 19절

베드로전서 4장 19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 주께 의탁할지어다.”

로렌스 형제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생길 때마다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고백을 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정말이지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즉시 로렌스 형제에게 충분한 힘을 부어주었다. 그가 죄를 지을 때는 주님께 고백하기를, “주님이 저를 내버려 두신다면 저는 나아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넘어지지 않게 지켜주시고, 제가 행한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다.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셔야 한다. 우리에게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 주님이 우리에게 선을 행할 능력을 주셔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셔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향한 소망을 잃지 않을 때 우리 마음의 문은 주님을 향하여 열리게 된다.

한 해가 지나갑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한 마음의 소원을 더 굳건히 하셔서 올 한해에 주님이 주실 은혜를 끝까지 붙드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다가오는 새해에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바라보며 우리 마음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가정과 일터에 주님의 은혜와 은총이 차고 넘치기를 축원드립니다. -진영정 목사 배상-

문제 넘기

문제 넘기
로마서 8장 5절

로마서 8장 5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의 연습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만큼까지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어 드릴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의 영혼은 영적인 일에만 관여할 수 없으며 어쩔 수 없이 바깥 세상의 일에도 관여해야 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여 세상에 영혼의 속을 다 내비치고 하나님께는 등을 돌려 대게 된다면, 그분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그다지 쉽사리 대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하심에 따라 자신의 영혼을 지키고자 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원할때 마다 자유롭게 그분과 사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로렌스형제, 13).”

로렌스 형제는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가라 앉은 배가 바위를 넘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려 배가 바위를 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배를 들어 바위를 넘는 방법이다. 전자의 방법은 쉽지만, 후자의 방법은 어렵다.

우리의 문제를 넘어가기 위하여 우리는 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 가운데 성령님이 넘쳐 흘러 성령님께서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일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 몰두 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문제의 생각 속에 헤매이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생각이 우리 안에 있는 열정을 불태우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이 불타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임재가 넘처흘러 우리의 문제를 넘어가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