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시편 42편 1절
시편42편 1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영적인 순례를 하다보면 ‘어두운 밤’을 경험하게 된다. ‘어두운 밤’이란 신자가 경건 생활에서 경험했던 모든 기쁨을 다 잃어 버리는 때를 말한다. 신자가 어두운 밤을 지나는 이유는 하나님이 차원 높은 영적 성숙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어두운 밤’을 지나서 신자도 모르게 자란 은밀한 교만, 감정 중심의 삶 그리고 잘못된 연약함을 뽑기 위함이다.
겸손하게 하기 위하여 어두운 밤을 지난다. 지나친 영적 활동과 열심은 자신도 모르게 ‘은밀한 교만’을 쌓아가게 된다. 신앙적 활동과 열심으로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착각이 ‘은밀한 교만’을 만든다. ‘교만’은 신앙적 활동과 열심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한다. 스스로를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 놓는다. 신앙적 열심과 노력이 그들을 더 경건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마귀는 경건을 향한 열정에 불을 붙이고, 불이 붙을수록 그들은 더 교만해진다. 왜냐하면 그들의 열심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거나 존중을 받기 위해서 영적활동이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을 ‘영적인 사람’으로 알아주지 않으면 화를 낸다. 또한 사람들이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들은 참지 못한다. 그들은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잘못을 없고, 상대방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혹 자신의 잘못을 알더라도 숨기고 고백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감정을 중시하는 신앙태도를 바꾸기 위하여 어두운 밤을 지난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떤 신자들은 경건 생활에서 얻는 감정에 집착하게 된다. 주님이 임재할 때 느끼는 뜨거움, 주님의 사랑을 느낄 때 흘리는 눈물 등에서 느끼는 감정에 집착하고, 그러한 감정이 없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외적인 경험이나 내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감정으로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감정으로 느낄 수 없는 초월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정으로 느끼지 못하더라도 주님은 우리의 손을 단단하게 붙잡고 계신다.
마지막으로 잘못된 연약함를 정화시키기 위하여 어두운 밤을 지난다. 기도를 깊이 하는 사람들도 죄의 유혹을 경험하게 되고, 그들은 육신의 유혹을 막을 힘이 없다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를 연약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강하다. 우리를 연약하게 하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영적인 일을 할 때 육신이 얻는 쾌락이 우리를 연약하게 한다. 쾌락에 중독되면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둘째로 마귀가 우리를 연약하게 만든다. 마지막 원인은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연약하게 만든다. 연약하다는 생각은 더 연약하게 만들고, 불순한 존재나 악이 우리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면 과도한 두려움이 생긴다. 과도한 두려움은 우리를 계속해서 연약한 존재로 남아 있게 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예수 그리스도의 강함으로 바꾸지 않으면 악한 세력은 우리를 계속해서 공격한다. 연약함을 잠재우게 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 분의 포도나무 가지에 남아 있어야 한다.
어두운 밤은 은밀한 교만, 감정 중심의 신앙생활, 연약함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정화시켜 준다. 우리가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 육체는 침묵하게 되고, 마귀는 잠잠해지며, 과도한 두려움은 가라 앉게 된다.
리처드 포스터가 묵상한 신앙고전 52선, “성 요한, 어둔 밤,” p6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