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눈

두 가지 눈
창세기 12장 10절~20절

창세기 12장 10절,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믿게 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고속도로와 같은 탄탄한 길을 가면 좋을 텐데, 험한 산 속을 계속해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때가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브람이 약속의 땅에 거주하였더니 약속의 땅에서 풍성한 수확을 얻은 것이 아니라 수확이 없어서 굶게 되었다. 약속의 땅이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었다. 아브람이 약속의 땅에서 풍성한 곡식을 얻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아브람이 복을 누리지 못한 이유는 약속의 땅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방해 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의 땅에서 약속을 이루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방해세력을 이기려면 약속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묵묵히 걸어가야만 한다.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이룰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룰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약속을 받은 사람이 약속대로 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다면 약속을 이룰 수 없다. 약속을 받은 사람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방해세력에게 지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다(시34:9). 이 말씀을 이루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말씀에 따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끝까지 순종한 사람들이 약속을 이루어 풍족하게 산다.그러나 불순종은 부족함을 경험하게 한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아브람은 그 땅에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갔다. 애굽은 가나안보다 풍요로운 곳이고, 곡창 지대이다. 아브람은 약속의 땅에서 위기가 찾아오자,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사람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불순종한 아브람은 더 큰 부족함을 경험하였다.

아브람이 어떻게 부족을 벗어났는가?  아브람은 부족함을 통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청함으로 부족을 벗어날 수 있었다. 아브람의 기도가 아브람의 위기시에 하나님께서 개입 할 수 있도록 하였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부족을 채울 수 있게 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아내 사라를 데리고 간 바로 왕에게 큰 재앙을 내리시어, 바로가 사라를 아브람에게 직접 돌려주게 하셨다. 아브람의 기도는 아브람의 채움으로 이어졌다.

바로가 재앙을 받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공평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말씀은 바로의 재앙에 초점을 맞추면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된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바로의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다. 바로가 사라를 취하여 그녀와 합방하여 자녀를 낳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녀를 통하여 이루실 구원의 역사는 이룰 수 없게 된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아브람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여야 한다. 바로는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필요가 있었고, 바로는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눈을 통하여 성경을 보아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사람의 눈을 통하여 성경을 보면 진리가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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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위기와 기회

순간의 위기와 기회
창세기 12장 1절~9절

창세기 12장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주셨는데 기도의 응답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초조해진다.시간이 지나도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응답을 잘못 받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때가 위기의 순간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기회의 순간이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나 응답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때로는 응답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시간이 걸릴 때가 있는데 시간이 걸리는 첫 번째 이유는 믿음을 시험하기 때문이다. 응답이 시간이 걸리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응답을 땅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방해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방해세력을 하늘에 있는 악의 영이라고 성경은 기록한다(엡6:12).

아브람에게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브람은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받았던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아브람이 약속을 의심한 첫 번째 이유는 아버지가 죽어서 혼자 있는 외로움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브람은 혼자서 고향을 떠나 갈대아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낯선 곳에 들어가야 하는 아브람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오셨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오셔서 말씀을 들려주신다, “너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람은 두 번째로 들었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들었다. 아브람은 하란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아브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브람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아브람은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 아브람이 믿는 하나님은 지역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세계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의 전환이 있었을 것이다.

아브람은 위기의 때에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을 것이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위기 속에 두지 않고 독수리가 새끼를 품듯이 날아서 위기에서 기회로 옮겨 주신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으면 기회로 바뀌는데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기회로 바뀌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시고 나를 혼자 두셨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위기의 순간이 기회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위기의 순간에 생각을 바꿀 수 있는가?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두 번째는 믿음을 같이 하는 공동체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을 때 위기의 순간에 기회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위기는 기회라는 생각의 전환이다. 혼자 있는 위기의 순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회의 순간이며, 고통 속에 있는 위기의 순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경험하는 기회의 순간이라는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위기가 기회라는 생각의 전환이 있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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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의 길

짙은 어둠의 길
창세기 11장 10절~32절

창세기 12장 16절~19절, “16절: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절: 벨렉을 낳은 후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절: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절: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셈의 족보를 통하여 대홍수 후에 사람들의 수명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대홍수 전에 구 백세를 넘게 살던 사람들이 대홍수 후에 사람들의 생명의 년수가 오백 년, 사백 년, 삼백 년, 이백 년, 백 년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오늘 새벽에 집에서 교회로 갈 때에 지난 밤에 비가 내린 흔적이 없었다. 어제 저녁에 비가 온다고 기상청이 예보했는데 기상청의 예보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어제 내린다는 비가 다음 날 새벽에 내린 것이다.

요즘은 기상청에서 예보하는 날씨가 거의 맞다. 예전에는 기상청이 예보한 날씨를 반대로 생각하면 거의 맞았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기상청이 예보 하면 우산을 가지고 나가면 되었고, 눈이 온다고 기상청이 말하면 털 옷을 입고 나가면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기상청에서 비가 내린다고 하면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린다고 하면 눈이 내린다.

기상청이 예보한 날씨가 맞는다면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은 어떠하랴? 대홍수 전에 사람들이 생명이 백이십 년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창6:3),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홍수 이후에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홍수 전에 구백 세가 넘게 살던 사람들이 대홍수 후에는 생명의 년 수가 급격하게 줄어 백세 시대를 살고 있었다.

대홍수 전에 족보는 이름만 기록되었는데, 대홍수 후 생명의 년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니 족보의 기록이 좀더 상세해 진다. 셈의 족보에서 데라, 데라에서 아브라함으로 족보의 렌즈를 좀더 상세하게 비추고 있다.

데라가 이백 오세에 하란에서 죽었다는 말로 창세기 11장은 끝을 맺는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은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머물렀는데, 하란에서 아브라함이 의지하던 아버지 데라가 죽고, 데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을 성경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데라가 죽음은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아마도 아버지 데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인생의 짙은 암흑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혼자 있던 아브라함, 그나마 의지할 수 있던 아버지가 죽었을 때의 아브라함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길을 걷다 보면 밝은 빛으로 비추일 때가 있고, 캄캄한 어두움 속을 헤맬 때가 있다. 어둠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은 길을 잃게 된다. 어두움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갈 길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가 어두움 속에 있을 때 짙은 어둠의 길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 가는지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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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

고인 물
창세기 11장 1절~9절

창세기 11장 9절,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한국에서 중산층은 예전보다 살기 어려워진 것 같다. 정부가 돈이 없어서 세금을 더 걷으려고 하지만, 늘어난 세금을 중산층이 부담하게 되어 그 나마 남은 중산층도 사라지고 있다. 남은 중산층이 사라진다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만 한국에 남게 될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만 남아 있다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대립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대립을 중간에서 완충시키는 중산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산층이 나라의 기반이라고 말하는가?

사람의 기반은 무엇일까? 사람의 기반은 말이다. 왜냐하면 말이 다르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고, 말이 하나였는데 하나인 언어가 나누어진 이유를 설명한다. 창세기 11장 6절~7절, “6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절: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사람들의 언어가 달라진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바벨탑을 쌓으려 하였기 때문이다. 바벨탑을 쌓으려는 동기가 악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다르게 하셨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동기가 그들의 이름을 내고, 그들이 이 땅에서 흩어짐을 면하려는 것이었다(창11:4-5절).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 것이 악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높였기 때문이다. 하나님보다 자기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악’이다. 스스로가 자기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교만이고, 교만은 ‘악’의 시작이다.

이 땅에 흩어짐을 면하려고 한 것이 악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땅에서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는데 ‘흩어짐을 면하려고’하였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한 증거이기 때문에 ‘악’하다.

요즘 시대가 글로벌 시대라고 말한다. 세상이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가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세상이 하나가 되는 동기가 무엇인가? 하나되는 동기를 알고자 하면,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들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이 하나가 되는 동기를 알게 할 것이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한 곳에서 자기 이름만 쌓는 사람, 한 곳에 사람을 모이게 하여 바벨탑만 쌓는다면 고인 물과 같이 썩게 된다는 의미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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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현실

추억과 현실
창세기 10장 1절~32절

창세기 10장 1절, 32절, “1절: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32절: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어제는 청평에 있는 서호 음식점에 갔다. 그 곳은 어머님이 아버님과 손자 태근이와 자주 가던 곳이라 한 번 가고 싶다고 하셨다. 예전에 아버님 친구 분이 운영하던 음식점인데 지금은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음식 맛이 예전과 같지 않았고,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청평으로 가는 길이도 많이 달라졌다. 고속도로도 생겼고, 예전과 같은 정경은 볼 수 없었다. 어머님은 달라진 길과 음식점을 보고 나서 이제 아버지와 함께 하였던 청평의 추억을 정리할 수 있겠다고 말하였다.

성경은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족보를 읽을 때면 지루하여 때로는 족보를 읽다가 성경을 덮기도 한다. 이렇게 장황한 족보가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경을 읽지 못한다고 자신에게 성경을 읽지 못하는 이유를 합리화한다. 성경을 덮으면서 지루한 족보를 성경이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한 번쯤은 던지게 된다.

오늘 말씀은 노아의 후손들의 족보이다. 야벳의 족보는 4절로 기록되어 있다. 함의 족보는 15절로 되어 있다. 셈의 족보는 11절로 되어 있다. 야벳의 후손들은 나누어져서 각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다. 함의 후손은 니브롯과 같은 용감한 사냥군도 있었고, 바벨과 앗수르, 니느웨이에 이르는 나라를 만들었다. 셈의 자손은 나누어짐 없이 그의 족속과 언어와 지방대로 나라를 이루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가장 큰 문명을 이루었던 함의 후손은 지금 후진국으로 전락하였고, 바닷가에 머물렀던 야벳의 족속들이 오늘날 선진국이 되었다. 셈의 족속은 나누어지지 않고 그 족속과 언어와 지방대로 나라를 이루었다. 나누어지지 않고 한 민족, 한 나라를 유지한 나라들이 셈 족속이다.

노아의 족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노아의 족보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현실성’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노아와 그의 후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졌고, 지금도 충만하고 있는 현실을 노아 족보가 말하고 있다.

노아 족보가 우리에게 주는 오늘의 의미가 무엇인가? 사람의 발자취는 추억으로 남지만,하나님의 발자취는 현실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추억과 현실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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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 다른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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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18절~29절

창세기 9장 21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농사를 시작하였다. 농사가 잘 되어 포도주를 마시고, 그의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자고 있었다. 함이 장막에 들어와서 술에 취하여 벌거벗은 모습으로 아버지가 장막에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곧바로 함은 아버지의 모습을 셈과 야벳에게 알렸다.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들은 셈과 야벳은 자기들의 옷을 어깨에 매고, 뒤걸음으로 아버지에게 다가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다.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았고,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

오늘 말씀의 일반적인 해석은 노아가 농사를 다 짓고 나서, 홍수 전의 모습을 생각하니 갑자기 노아가 허무한 생각이 들어서 술을 먹었고, 술을 과하게 먹어서 취하였다. 노아가 취하여 자고 있는 아버지 하체를 본 함은 저주를 받았고,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은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다고 해석한다.

만약 노아가 대홍수 전에 술을 먹었고, 대홍수 전에 먹던 습관대로 대홍수 후에 술을 먹었다면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창세기 9장 21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홍수 전에 사람들은 놀고, 먹고, 취하고, 결혼하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모든 혈육 있는 행위가 부패하였다(창6:12)라고 성경은 말한다.

노아가 대홍수 전에 포도주를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포도주를 마시고’라는 말로 노아가 대홍수 전에 일반적으로 먹었던 같은 양의 포도주를 대홍수 후에 먹었더니 취하였다라고 해석하면 전달하는 내용이 어떻게 달라질까? 대홍수 전에 같은 양의 포도주를 먹은 노아의 몸에는 문제가 없지만, 대홍수 후에 먹게 된 같은 양의 포도주는 노아를 취하게 한 것은 아닐까?

알코올이 약물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 단순히 기호식품이고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약물 중에 가장 치명인 중독 성향을 가진 약물이 알코올이다. 중독이란 멈추고 싶은데 멈추지 못하는 것이 중독이다. 사람의 의지로 멈출 수 있다면 중독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사람의 의지를 멈추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다. 돈 없이 살 수 없다면 돈이 중독이 된다. 섹스 없이 살지 못한다면 섹스가 중독이 될 수 있다. 화를 계속해서 내는 것도, 화를 끊지 못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지로 끊고 싶은데 끊지 못한다면 중독이 아닐까?

노아가 취한 사건으로 함은 저주를 받았고, 그의 형제들의 종이 되었다. 같은 사건으로 함은 저주를 받는다. 같은 사건으로 셈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고, 함은 셈의 종이 된다. 같은 사건으로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시고,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함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신다. 같은 사건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있고, 저주를 받는 사람이 있다.

우리에게도 같은 사건인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사람은 없을까? 같은 사건인데 축복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저주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기도 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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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찾아서

무지개를 찾아서
창세기 9장 1절~17절

창세기 9장 13절,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무지개를 보면 아름답다. 무지개를 주신 의미를 알면 무지개는 더 아름다워 보인다. 무지개는 노아와 세상에게 주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무지개는 앞으로 비가 오지만, 비로 모든 육체와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무지개를 바라볼 때마다 노아는 비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무엇을 위하여 오늘을 살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있다. 살다 보면 힘든 일에 지쳐서 넘어지고 싶을 때가 있다. 언덕을 넘어가려고 열심히 걷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도 하는데 올라가야 하는 언덕이 끝이 없다. 언덕을 넘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희미해 질 때가 있다.

요즘 상황이 나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희미하게 한다. 오늘 새벽 시편136편의 말씀을 주셨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절).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2절).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0절).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1절).”

주신 시편 말씀을 읽을 때 힘들 때 감사하여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열어주실 것을 감사하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나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 목사로써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머리의 감사는 하지만 진정한 마음의 감사를 하기 어렵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낙심하고, 감사하지 못할 때가 있다. 감사가 없으면 일이더 엉키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마음에 와 닿을 때 감사할 수 있다. 이론으로는 알지만, 이론이 가슴으로 내려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비가 내릴 징조가 보이는 구름이 땅을 덮을 때마다 노아는 구름을 얼마나 두려웠을까? 두려워하는 노아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다. 하나님은 노아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알고 계신다. 구름이 나타나면 두려워하는 노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몰려 드는 구름은 노아를 멸하는 구름이 아니라 땅을 적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다.

몰려오는 두려움과 고통이 구름 같이 덮일 때 우리는 무지개를 기억해야 한다.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약속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무지개 약속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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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의 의미

사계절의 의미
창세기 8장 13절~22절

창세기 8장 21절~22절, “21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절 땅에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 계절 중에 봄과 가을이 생활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특히 겨울로 향하는 가을은 여인들의 마음을 훔치는 계절이다. 여인의 마음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게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어제 밤 비가 조금 내려 땅을 촉촉하게 적셨다. 비만 보면 성령의 단비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적당한 습기, 차가운 가을 공기가 코를 스쳐 지나가니 마음이 상쾌해지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였다.

가을에 주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질문은 가을을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찾아야 한다. 가을은 뿌린 씨를 거두는 계절이기 때문에 농부들은 가을을 목매어 기다린다. 결실을 맺는 계절이기 때문에 결실이 가을에 주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어제는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 주일로 드리는 날이었다. ‘감사주일’이라서 그런지 한 해를 지나면서 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자연스럽게 감사를 드릴 수 있었다. 주신 은혜에 감사하였더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혈육 있는 생물들을 방주에서 내리게 하였다. 노아는 방주에서 내리자 마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제사들 드렸다.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노아에게 약속을 하셨다: “내가 다시는 사람을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창8:21)”.

사람이 악해도 앞으로 땅이 저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 땅을 밟으니 달라진 것이 있다. 노아의 대홍수 이전에 없었던 추위와 더위가 생겼다(창8:22). 여름과 겨울이 생긴 것이다. 사계절을 통하여 노아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사계절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지구의 환경이 변해서 사계절이 생겼겠지만, 사계절을 보면서 우리가 떠올려야 할 사계절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사계절의 상징적 의미는 사계절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사계절 속에도 변화하지 않는 한 분,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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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기억

한 줄의 기억
창세기 8장 1절~12절

창세기 8장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 들었고’.

오늘 새벽 인천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할 때 공항 활주로에 비추는 빛은 마치 십자가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십자가와 같은 활주로의 빛이 비행기를 안전하게 땅에 착륙하도록 하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십자가와 같은 활주로의 빛을 기억하면서 인천공항을 나왔다. 활주로에 빛을 비추기 위하여 뒤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미 있는 사건 뒤에는 의미 있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특히 하나님께 의미 있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행복을 넘어 영광된 사람이 된다.

오늘 말씀은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바람을 불게 하셨으며, 땅 위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땅에 넘치는 물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 방주에 있는 노아와 모든 생물을 기억하여서 물로 심판하신 세상을 구원하고 생명을 불어 넣기 시작하셨다.

우리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우리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닮아가고 있다. 가장 좋은 기억을 남긴 사람, 혹은 나쁜 기억을 남긴 사람들이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한 부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어머님은 장례식이 있으면 찬양(조가)을 부르시는 사역을 하신다. 장례식에서 찬양(조가)을 부르기 전에 죽은 사람이 천국에 갔는지 아닌지 느낀다고 말씀하신다. 천국에 간 사람의 장례식에서는 다시 그 분을 천국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어머님은 기쁘게 찬양(조가)을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천국에 가신 그 분을 기억하면서 기쁘게 찬양하는(조가를 부르는) 어머님과 같이 어머님의 장례식에 찬양(조가)을 부르는 사람에게 기쁘게 찬양(조가)을 부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죽을 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오늘도 우리는 죽을 때 기억되는 한 사람의 모양을 한 줄의 기억으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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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방주

두 가지 방주
창세기7장 13절~24절

창세기7장 22절,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살아 가는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안전’이다. 집이 안전하기를 원하고, 동네가 안전하기를 원하고, 자신이 안전하기를 원한다. 안전하지 못하면 사람은 불안해진다. 불안이 오래 지속되고, 강도가 커지면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

홍수 심판으로 지면의 모든 생물들이 다 죽게 되었다. 공중의 새들도 살아 남은 생물이 없었다. 그러나 오직 방주 안에 있었던 노아와 가족, 생물들만이 살아 남았다. 수 십일 동안 비가 계속 내리고, 홍수가 나서 땅이 부서지고 갈라져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든 ‘방주’만이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여성 심리학자인 Karen Horney(카렌 호나이)에 따르면 아동기 때는 부모에 대한 적개심이 있어도 억압을 하는데 억압을 하는 이유를 무기력, 두려움, 사랑, 죄의식으로 나누었다. 무기력이란 ‘나는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의 적대감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뜻이고, 두려움이란 ‘당신이 두렵기 때문에 나의 적대감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의미이고, 사랑이란 ‘당신의 사랑을 잃어버릴까봐 적대감을 억압할 수 밖에 없어요’란 호소이고, 마지막으로 죄의식은 ‘당신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적대감을 억압할 수 밖에 없어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적개심을 억압하면 부정적인 성격의 발달로 이어진다. 적개심은 안전이 무너지기 때문에 생기는 자기 방어기제이다. 즉 ‘안전’이 흔들리면 부정적인 성격 발달로 이어진다. 대홍수 속에서 죽어가는 생물을 보면서 노아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방주 안에 있으면서 방주가 과연 안전할까 하는 ‘안전에 대한 의심’은 없었을까? 창세기 9장에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는 모습은 노아의 불안이 부정적인 성격으로 이어졌다는 반증은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안전한 방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우리는 불안해 하지는 않은지 돌아 보아야겠다. 안전한 방주에 있으면서 불안해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주님의 방주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방주가 문제이다. 주님의 방주가 무너져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방주가 무너져서 ‘불안’하게 된다. 마음의 방주가 무너진다면 예수 그리스도 방주는 마음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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