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피는 꽃
-도 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진영정 목사의 블로그
흔들리며 피는 꽃
-도 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잘못된 믿음(2): 회복되면 끝이다
디모데후서 4장 7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헨리크라우드와 존 타운센드가 쓴 “당신을 미치게 하는 열두 가지 잘못된 믿음”에서 5번째 주제가 “회복되면 끝이다”이다. 도움을 찾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주로 한다고 말한다; “아직도 치료가 안 끝났어? 언제 좋아질거야? 좋아지는 게 아니라 더 나빠지고 있는 것 아냐? 이제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나? 기한을 정해 두어야 하는 거 아냐? 목표를 가지면 좋지 않을까?” 사람들이 위와 같은 말을 하는 이유는 그 말들을 하는 중심에 “회복되면 끝이다”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고장난 부분을 빼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음이 회복에는 끝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
‘회복되면 끝이다’라는 잘못된 믿음은 회복과 영적 성숙을 분리시키게 되고, 회복 된 사람과 회복되지 않는 사람을 차별하게 한다. 그러나 ‘회복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우리의 회복은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계속되는 싸움이다. 만약 우리가 회복에 끝이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정신적 어려움을 갖거나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회복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면 어떠한 사람이든 회복되는 과정에 있는 은혜의 여정으로 믿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건 적은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건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믿기 때문이다.
잘못된 믿음(1):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
빌립보서 2장 12장,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헨리 크라우드와 존 타운센드가 쓴 “당신을 미치게 하는 열두 가지 잘못된 믿음”에서 4번째 주제가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된다”이다. 구원에 있어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신 뜻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자이다. 구원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하셨지만, 구원을 이루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를 신학적인 용어로 ‘성화’라고 말한다.
헨리 크라우드는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영과 마음을 성숙시키는데 매우 소극적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치유와 성숙에 대하여 “손을 놓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보자”라는 방관적인 자세를 취한다고 그는 말한다.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을 미치게 만들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주님 앞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우리의 역할이나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됨을 주님께 고백함으로 우리는 주님의 필요를 청한다. 왜냐하면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필요를 우리가 얻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영적인 성숙의 부분이다. 영적인 성숙은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다하고 힘쓸 때 이루어지는 부분이다.
영성과 행동
에베소서 5장 9절,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가 믿는 잘못된 믿음 중에 행동만 바꾸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믿음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믿는 착각이다. 예수님시대에 말씀을 실천하려는 열심이 가장 컸던 종교지도자들 중에 바리새인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 의하여 칭찬을 받았지만 예수님에게 칭찬 받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눅12:10),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눅11:42).
거룩한 행동을 하는 모든 분들이 성령의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는 행동을 거룩하게 하는 사람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착각하고 행동만 변화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는 성령이 임재하여 마음이 변화되어 행동으로 나타내는 사람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성령님과 함께 하고,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행동이 바뀐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다(때로는 마음이 바뀌었는데 행동을 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마음이 바뀌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보이기 위한 행동,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아서 억지로 하는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마음이 바뀌지 않고 행동만 그럴뜻하게 보이면 우리는 마음에 거짓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에 거짓이 쌓이면 예수님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분이 된다. 우리는 선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선한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6월의 장미
-이 해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 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 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어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죄와 영성
욥기 4장 7절,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오늘 말씀은 엘리바스가 욥에게 한 말이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네가 죄가 있으니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지금 빨리 회개하라”고 말하는 말이다. 헨리 크라우드와 존 타운센트의 <당신을 미치게 하는 열두 가지 잘못된 믿음>에서 크리스찬이 믿고 있는 잘못된 믿음 중에 하나가 “정말 영적인 사람이라면 고통을 받거나 죄를 범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믿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성경은 죄로 인한 고통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고통이 죄로 인하여 온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제자들이 소경인 자를 보고, 예수님에게 저 소경이 소경으로 난 것은 누구의 죄로 인함이냐고 물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 사람이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였다.
영적인 사람이라면 고통을 받지 않거나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도 고통을 받고 죄를 범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를 찾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게 된다.
필요와 이기심
빌립보서 2장 7절~8절,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오늘 말씀은 십자가의 설교를 할 때 많이 인용되는 말씀이다. 십자가란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죽이는 일이다. 성경에서 자기 부인이란 첫째는 하나님 사랑, 둘째는 이웃 사랑으로 요약할 수 이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은 자기의 이기심을 버리라는 말이지 자기의 필요를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자기 부인이 우리의 필요를 버리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주기도문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간구가 있다. 만일 ‘일용할 양식’이 우리의 이기심으로 구하는 기도라면 우리에게 이러한 기도를 주님은 가르쳐 주지 않으셨을 것이다.
우리는 약한 존재이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지 못한다면 무너지는 약한 존재이다. 자기를 부인하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명령한다고 해서 우리는 우리의 필요까지 부인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필요와 이기심을 구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자기부인이라는 명목으로 거부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지 못하실 것이다.
오늘 미국은 메모리얼 데이로 공휴일이다. 메모리얼 데이는 한국의 현충일과 같은 날이다. 국가를 위하여 싸우다가, 국가를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 받는 날이다. 순국선열의 정신을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다른 행동을 한다. 순국선열의 정신을 기억하는 사람, 정신에 관심이 없는 사람, 정신을 기억하고 행동에 옮기려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행동을 한다.
교회에서도 서로 다른 정신을 따르고 행동하는 교인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교인, 교회의 건물을 지키려는 교인, 죽은 사람들의 관습과 습관을 그대로 행동하는 교인들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복음을 증거하였던 때는 교회가 성장하던 때였다. 교회를 지키려 하던 때는 자기교인들만 돌보던 때였다. 죽은 사람의 정신을 지키려는 때는 교회 건물만 있고 몇 명의 노인들이 교회를 지키던 때였다. 그들은 과거에는 이랬지하고 화려했던 과거만 기억하고, 과거에 따랐던 관습이나 습관만 우선시하는 교인들이다.
메모리얼 데이를 맞이하여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 교인인지 한 번 살펴보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
-유 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생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
사명을 이어가는 교회
여호수아 12장 1절~24절
여호수아 12장 6절~7절,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쪽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 산까지 쳐서 멸한 그 땅의 왕들은 이러하니라(이 땅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파에게 구분에 따라 소유로 주었으니).”
모세가 차지한 땅과 여호수아가 차지한 땅을 나누고 있다. 모세는 요단강 동편의 땅을 차지하였고, 여호수아는 요단강 서편의 땅을 차지하였다. 가나안 땅의 정복의 시작한 모세와 가나안 땅의 정복을 마친 여호수아를 구분하고 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지도자 계승이 잘되어진 예의 하나이다. 모세의 뒤만 따라다녔던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주신 가나안 땅의 정복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하여 다음 세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를 멀리하였지만, 가나안 땅의 정복을 완수한 지도자는 여호수아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래된 교회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 새로운 지도자를 세울 때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사명을 이어갈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 또한 새로운 지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기의 사명에 맞는 교회를 찾아야 한다. 새로운 지도자와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 교회의 사명이 맞지 않으면 교회에 어려움이 있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비전에 맞는 새로운 지도자를 찾을 수 없다. 새로운 지도자와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 교회를 서로 맺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기준으로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모인 장소가 된다. 그러나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 교회에 하나님이 새로운 지도자를 보내주신다면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사명이 계속하게 된다. 사명을 이어가는 교회는 하나님이 보내주실 지도자를 기다리지 찾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