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되려면

우리는 자녀들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이 세상을 이끌어 가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 자녀가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안목이 있어야 한다. 안목(Perspective)이란 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데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서 안목은 일을 한다면 내가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구분 할 수 있는 능력, 만약 시험을 본다면 내가 모르는 부분과 아는 부분을 정확하게 아는 능력을 안목이라고 한다. 안목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메타 인지(meta cognition)이라고 한다. 지능이 높다고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고, 집안 배경이 좋다고 리더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돈과 권력이 리더를 만들기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정확한 안목이 있어야 리더가 된다.

우리에게 성경이란?

교회가 세속화되고 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예전에는 교회의 세속화란 교회가 사회의 영향을 받아 세상의 흐름을 따르는 현상을 말하지만 요즘 말하는 교회의 세속화란 종교적인 현상과 사회를 분리하는 현상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란 좋은 사상 철학으로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한 답을 얻기 위한 참고서에 불과하게 된 것(사회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교회가 된 것)이 교회의 세속화이다. 이로 인하여 한국의 젊은이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단지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한 참고서인가? 성경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고 있으며, 성경은 살아 숨쉬는 생명의 말씀이고 성경은 우리를 구원해주신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

다양성은 유익한가?

미국의 기업들은 차별금지법을 따라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미국의 작업장에서 여성 종업원과 소수인종 종업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사회심리학에서 사회촉진(Social facilitation)을 언급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할 때 과업수행을 더 잘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개인이 다른 사람과 함께 경쟁할 때 단순작업이면 과업을 더 잘 수행하지만 복잡한 작업이면 함께 있는 것이 과업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된다.

다양성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양하게 고용하는 것이 기업에 이익이 되었는가? 한 연구자가 회사 웹사이트가 작업장의 구성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근거로 273명의 흑인과 백인 대학생들에게 회사 웹사이트를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끼는지 물었다. 어떤 웹사이트는 3명의 백인 관리자와 함께 있는 백인 종업원들의 사진만 보여주었다. 학생들이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될 경우 그 관리자들이 자신의 상사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두 번째 웹사이트는 백인 관리자와 함께 있는 흑인 종업원과 백인 종업원 모두를 보여 주었다. 세 번째 웹사이트는 백인 및 흑인 관리자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종업원을 보여 주었다. 실험결과는 백인 대학생들은 웹사이트에 나오는 특정회사에 대한 어떠한 선호도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흑인 대학생들은 관리자들이 인종적으로 다양한 회사 웹사이트를 선호하였다(Avery, 2003). 다양성은 소수 민족자를 고용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다수 민족자를 고용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 목사를 좋아하는가?

2005년도에 “한국교회 미래리포트”가 출판되었다. 교인들이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의 당회장 목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6가지 측면으로 물었다. 교인들이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의 당회장 목사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설교를 잘한다(89.9%), 신앙생활에 있어 솔선수범하는 편이다(85.4%), 지도력이 있다(85.2%), 개인적인 물질에 욕심이 없다(76.4%), 교인 관리나 행정적 관리를 잘한다(75.5%), 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53.1%)이었다. 목사는 목자라고 하는데 양에 대하여 알고 있는 목자는 53.1%에 불과하였다.

지금 여러분에게 “당신은 어떤 목사를 좋아하는지?” 하고 묻는다면 설교를 잘하는 목사, 도덕성이 높은 목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목사, 사람들을 잘 이끄는 목사, 영성 있는 목사 중에 어떤 목사를 선택할까? 목사는 영성이 높아야 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영성이 높은 목사를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나지막하게 해본다.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나요?

1927년 기독신보에서 교회의 쇠퇴의 원인과 희망을 다룬 적이 있다. “교회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점점 줄어가는 형편이다. 그 원인인 첫째, 사상문제. 교회는 사상계 지배 능력이 없다. 오히려 세상 사상에 요동한다. 둘째, 경제문제. 곧 생활문제이다. 사회경제 피폐하여 교회는 재정 핍절로 현상 유지를 못한다.” 90년 전에 기독신보에서 이야기 했던 현상들이 지금에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세상의 원리가 말씀의 원리보다 앞서는 교회, 믿음보다 돈이 앞서는 교회는 쇠퇴하게 된다. 반대로 소망이 있는 교회는 말씀의 원리를 순종하는 교회, 주님을 따라가는 교회가 소망이 있다.

어떤 목사님에게 “왜 목사님이 되셨나요?”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목사님은 “밥을 먹지 못하던 때에 어머님이 밥을 아랫목에 따뜻하게 데워서 목사님을 가장 먼저 드리는 모습을 보고 목사님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대답하였다. 교인들에게 똑같이 묻고 싶다. “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시게 되었나요?”

누가 크리스찬 리더인가?

누가 크리스찬 리더인가?

어제(2017년 1월 23일)는 계재광 교수(한남대학교 기독교학교수)가 인도하는 “미래교회 리더를 위한 크리스천 리더십”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한국 기독교 리더십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대에 따라 리더십 이론이 달라졌다. 혼란한 시대 1,2차 세계 대전이 있었던 시대에 리더십은 리더 개인의 특성과 역량이 중요한 이론이였다.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리더십은 리더 개인의 특성과 역량도 중요하지만 추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추종자까지 고려한 리더십 이론이 생기게 되었다. 20세기 말부터 정보산업화 시대라고 한다. 정보화 시대는 급변하는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리더십 이론은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여 리더 개인의 특성과 역량, 추종자와 함께 상황을 고려하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정체성을 강조한 리더십 이론이 성장하고 있다. 지속적인 개인주의와 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정체성의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속에서는 자기의 정체성이 분명한 도덕적 리더를 요구하게 된다.

요즘은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분명해진 시대이다. 믿음은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공적인 장소에서 개인의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다. 시대에 요구에 발맞추어 성도들은 하나님과 깊은 개인적 교제에 열광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사회와 동떨어진 또 하나의 ‘조선시대의 절’이 되고 있다. 교회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신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크리스찬 리더라고 말할 수 있다. 누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인가? 하나님이 보낸 크리스찬 리더는 하나님과의 깊은 개인적 관계로 맺은 사랑을 이웃에게 보여주고 실천하면서 Kingdom of God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신 리더, ‘크리스찬 리더’라고 말할 수 있다.

강박성 인격장애

현대인들은 무수한 경쟁을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산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을 선호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들을의 성향 중에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 완벽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 강박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강박성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성격이 아주 바르고 책임감이 강하다. 의무감에 충실하며 신뢰를 중시여기는 사람들이다. 자기를 억제하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지나치게 엄격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이 분명하여 잘못을 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인내심이 강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겉으로 보기에 완전한 사람들 같이 보이는 사람들 중에 강박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가? 강박성 인격장애의 핵심은 통제이다. 모든 사물이나 사람들이 그들의 통제권 안에 들어와야 한다. 또한 그들의 관심사는 지배와 복종이다. 그들은 칭찬에 인색하고 자신의 지위에 민감하다. 성경에서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다.

우리는 완벽하게 일하기보다는 우리 마음을 주님께 내어드려야 한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한발 한발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주님보다 앞서 우리가 주님을 인도하고 주님을 이끌려고 하면, 우리 마음이 주님과 멀어지게 된다. 주님과 멀어진 마음은 마음이 뒤틀리게 되어 있고, 뒤틀린 마음이 강박성인격장애이다.


-윤 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은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진리기독교상담센타 오픈예배

사랑하는 형제 자매 동역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진리기독교상담센타”의 시작예배를 아래와 같이 드립니다.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예배로 나가는 자리에 여러분을 정중히 초대합니다!

날짜: 2016년 7월 23일 토요일 오후4시
장소: Temple Baptist Church(플러튼 영락교회)
주소: 1601 W. Malvern Ave, Fullerton CA 92833

* International Reformed University & Seminary에서 재정부분을 맡게 되어서 그동안 글을 일주일에 2번만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 동역자님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을 위한 기도

오늘을 위한 기도
-이 해인-

기도로 마음을 여는 이들에게
신록의 숲이 되어 오시는 주님
제가 살아있음으로
살아있는 또 한번의 새날을 맞아
오늘은 어떤 기도를 바쳐야할까요?

제 작은 머리 속에 들어찬
수천 갈래의 생각들도
저의 작은 가슴 속에
풀잎처럼 돋아나는 느낌들도
오늘은 더욱 새롭고

제가 서 있는 이 자리도
함께 살아 가는 이들도
오늘은 더욱 가깝게 살아 옵니다

지금껏 제가 만나 왔던 사람들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을 통해
만남의 소중함을 알고
삶의 지혜를 깨우쳐 주심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의 길 위에서
제가 더러는 오해를 받고
가장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쓸쓸함에
눈물 흘리게 되더라도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길을 가는
인내로운 여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제게 맡겨진 시간의 옷감들을
자투리까지 아껴 쓰는
알뜰한 재단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할 일들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슬기를 주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 밖에는 없는 것처럼 투신하는
아름다운 열정이
제 안에 항상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제가 다른 이에 대한 말을 할 때는
“사랑의 거울” 앞에
저를 다시 비추어 보게하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남과 비교하느라
갈 길을 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오늘을 묶어 두지 않게 하소서

몹시 바쁜 때 일수록
잠깐이라도 비켜서서
하늘을 보게하시고
고독의 층계를 높이 올라
내면이 더욱 자유롭고 풍요로운
흰 옷의 구도자가 되게 하소서

제가 남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극히 조그만 것이라도 다 기억하되
제가 남에게 베푼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큰 것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건망증을 허락하소서

오늘 하루의 숲 속에서
제가 원치 않아도
어느새 돋아나는 우울의 이끼
욕심의 곰팡이,
교만의 넝쿨들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그러하오나, 주님
이러한 제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절망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가는
꿋꿋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소서

어제의 열매이며 내일의 씨앗인
오늘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는
어느 날 닥칠 저의 죽음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겸허함으로 조용히 눈을 감게 하소서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했습니다”
나직이 외우는 저의 기도가
하얀 치자꽃 향기로
오늘의 저의 잠을 덮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