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기도

겨울 기도
-마 종기-

하느님, 추워하면서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에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겨울비

겨울비
-김 종길-

겨울비 후둑이는 저녁 어스름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일 년에 한 두번 얼굴을 맞대는
옛 동기생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동기생들의 반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지금 십여 명이 서울에 살고 있지만
한 두 사람은 연락이 닿지 않고
한두 사람은 병석에 갇혀 있어
모처럼 모인다 해도 반밖에 나오질 않는다.

그러나 가장 허물없는 사이가 그들이다
지금은 백발에 주름잡힌 얼굴들이지만
모이면 모두 육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
버릇없는 중학생들이 되어 즐겁기만 하다.

망년회란 한 해를 잊자는 것인가
아니면 나이를 잊자는 것인가
아니면 그 두 가지를 다 잊자는 건가
겨울비 후둑이는 저녁 어스름
늙은 동기생들을 만나러 집을 나선다.

겨울 편지

겨울 편지
-이 해인-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산 위에
바다 위에
장독대 위에
하얗게 내려 쌓이는
눈만큼이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눈 사람 되어 눈 오는 날

눈처럼 부드러운 네 목소리가
조용히 내리는 것 같아
눈처럼 깨끗한 네 마음이
하얀 눈송이로 날리는 것만 같아
나는 자꾸만
네 이름을 불러 본다

겨울 기도

겨울 기도
-마 종기-

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에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감사의 기도

감사의 기도
– 이 철 –

뛰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프고 피곤할 때 용기를 주시고
괴롭고 외로울 때 소망을 주셨으며

모두를 지켜 큰 사고 없이 하시고
고통을 헤엄치면서도
아주 빠지지 않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도 감사하고
나를 공격해온 사람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를 더 너그러운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때때로 가시를 주셔서 잠든 영혼을
깨워주셨고
한숨과 눈물도 주셨지만

그것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도
배웠습니다.

날마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감사를
발견하는 자세를 주소서

무엇이 생겨서가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발생하지 않음을 감사하게 하소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과

편리한 세월에 태어난 것과
세어도 세어도 끝이 없는
그 많은 감사를 알게 하소서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게 하시고
질투의 화산 속에 들어가지 말게 하시고
돈을 목적 삼지 말게 하소서

사랑의 속삭임을 내 입술에 주시고
감사의 노래를 내 심장에 주소서

불평하지 않게 하소서
화를 내지 않게 하소서

이해하게 하소서
덮어주게 하소서

악한 생각을 버리게 하소서
모든 일에 감사만 있게 하소서

11월의 시

11월의 시
-이 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을 비우고

초연히 겨울을 떠나는 모습
독약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깊은 눈물은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