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여정

사랑의 여정
마태복음 6장 6절

마태복음 6장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주여,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주님께 말해야 한다. 그러면 기도 속에 담겨진 수많은 비밀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욕망, 의심, 근심, 두려움과 열등감 등은 우리의 기도를 막는다. 기도를 가로막는 것들은 마음의 평정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 우리는 기도를 가로막는 것들을 넘어서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

기도의 방해꾼들을 넘는 기도를 어떻게 하는가? 첫째, 방해꾼을 넘어서는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여야 한다. 기도는 초자연적인 행위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심으로 구하면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을 넘어서 기도할 수 있다. 둘째,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여야 방해꾼들을 넘어서 기도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이 평정을 유지하려면, 우리가 가진 잡념들이 사라져야 한다. 잡념이 생기면 잡념을 없애려고 애쓰지말고, 잡념이 지나가도록 한다. 잡념이 지나가면 고요한 마음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셋째, 우리는 육신적인 기도 혹은 영적이지 않는 기도를 넘어야 한다. 기도는 영적행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마음을 하나님께 표현해야 한다. 영적인 마음은 영의 소리이다. 하나님은 육신의 소리를 듣고 응답하지 않고, 영적인 소리에 응답하신다. 우리가 영적인 소리를 내어 주님께 말한다면 주님은 대답하신다.

우리가 영적인 마음을 어떻게 주님께 표현하는가?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우리 마음을 주님께 향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인 마음을 주님께 표현할 수 있다. 주님께 마음을 향한다는 뜻은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깊이 생각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영적인 마음을 주님께 표현하면, 우리는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는 사랑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소유하고 싶은 것

소유하고 싶은 것
요한일서 2장 15절

요한일서 2장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다음은 조지 베벨리 셰이의 찬송이다. 예수님보다 우리가 더 소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보다 더 소유하고 싶은 것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을 우리가 받지 못한다.

이나 보다 나는 예수님을 갖고 싶네
재물보다 더 나는 그를 소유하고 싶네
이나 보다 나는 예수님을 갖고 싶네
나는 차라리 그의 못자국 난 손에 이끌리려네

사람들의 박수보다도 나는 예수님을 갖고 싶네
나는 그의 사랑을 인해 충성을 바치려네
세상의 인기보다 나는 예수님을 갖고 싶네
나는 그의 거룩한 이름에 진실하고 싶네

그는 활짝 핀 백합보다 존귀하며
그 벌집에서 나온 꿀보다 더 달도다
그는 나의 갈급한 영혼을 모두 채우시네
나는 차라리 예수님을 갖고 그를 따르겠네

<후렴>
큰 나라의 왕이 되어 죄의 무서운 지배 속에 있는 것보다도
이 세상이 지금 주는 어떤 것보다도 나는 예수님을 갖고 싶네

받은 줄로 아는 믿음

받은 줄로 아는 믿음
마가복음 11장 23절-24절

마가복음 11장 23절-24절, “2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탁상 담화문”에서 기도의 용어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간구 기도’는 설득의 한 형태로 강한 기도를 말한다. ‘청원 기도는’은 마음 속의 소원을 열거하는 기도이다. ‘힘 있는 기도’는 ‘청원 기도’로 힘을 얻고, ‘간구 기도’로 인내하게 되며, ‘감사 기도’로 기쁨이 넘치는 기도를 말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쉬지않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쉬지 않는 기도’는 영적인 기도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기도는 영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기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얼마든지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 영적인 기도는 어떤 형태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육신을 십자가에 죽여, 마음과 생각이 오로지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을 때, 그 생각과 마음이 영적인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고 싶어한다. 성경은 기도 할 때 ‘기도의 응답’은 이미 다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늘에서 응답된 기도가 땅에서도 응답되기 위하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공중 권세자들은 하늘에서 응답 된 기도가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막다. 우리는 공중 권세자를 뚫고 이 땅에서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 한다. 우리 기도가 응답받기 위하여 우리는 ‘받은 줄로 알고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받은 줄로 알고 믿는 믿음’은 응답 받는 ‘시간, 방법과 장소’를 주님께 맡기는 믿음이다. 우리가 시간과 장소, 방법을 주님께 맡길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이미 하늘에서 응답되었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한 사랑

마음을 다한 사랑
마태복음 22장 37절-38절

마태복음 22장 37절-38절, “3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어떤 목사가 교회 성도 중 한 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당신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 성도는 “그런 질문을 내게 한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교회를 섬기고, 주님을 예배하고, 주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 분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일이 있다면 우리가 주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냐하고 물으면 선뜻 마음을 다하여 사랑한다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마음을 다한 사랑을 받아보지도, 해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마음을 다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던 분을 떠올리라고 말하면, 우리들의 부모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우리의 부모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말하기보다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여야 한다. 거한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넘쳐 흘러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려는 결정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넘쳐흐르는 감정이기보다 의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로 주님을 사랑하기로 결정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는 그 분의 사랑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 다하여 사랑할 수 있다.

셋째,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성령님께 맡긴다. 우리의 마음을 우리가 이끌지 않고, 성령님께서 이끌도록 한다.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성령님께 맡길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 주변의 이웃과 가족의 말을 들어주고, 때때로 그들의 뜻을 받아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침마다 눈을 뜰 때, 우리는 마음을 다한 나지막한 소리로 주님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한다.

우리의 신앙은 ‘열심이나 헌신’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데서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

사라진 근심

사라진 근심
누가복음 12장 22절

누가복음 12장 22절, “너희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의 필요를 아시고, 필요를 채워주시기 때문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근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제자들이 필요할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근심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세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근심하게 한다. 세상은 우리가 물질에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안다. 우리가 아무 것도 먹지않고 산다면 백일 이상은 살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물까지 먹지 않는다면 살 수 있는 날은 더 줄어든다. 이렇게 물질에 연약한 우리가 물질에 대한 근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도 우리가 물질에 근심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근심을 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단서가 있다. “우리 목숨을 위하여” “우리 몸을 위하여”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복음의 전파를 위한 근심,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근심, 구원에 대한 근심 등과 같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근심은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의 근심은 기도함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근심하지 말라는 뜻은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근심하고 기도하게 되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근심은 사라진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 목숨과 몸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필요를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근심을 사라지게 한다고 말씀을 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우리의 모든 근심을 사라지게 한다.

적은 일

적은 일
마태복음 25장 21절

마태복음 25장 21절, “21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사람들은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모습을 볼 때, “나도 그들처럼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일하는 경험을 하고 싶다”고 그들은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려면 그들이 작은 일에 먼저 충성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적은 일이란 무엇인가? 적은 일이란 다른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일들을 주님만 바라보고 하는 일들이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실 때 요한에게 맡겨주신 일은 적은 일이었다. 예수님은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셨다. 다른 사도들은 복음전파라는 큰 일을 하고 있었지만, 요한은 마리아를 돌보는 적은 일을 하였다. 마리아를 돌보면서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였고, 요한1,2,3서를 기록하였다(성경기록의 시기는 신학자마다 다르다). 그리고 마리아가 하나님 품으로 가자,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남들이 적은 일이라고 여기는 일에 충성한 요한에게 다른 사도들보다 더 큰 일이 맡겨졌다.

주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적은 일’은 무엇인가? 가까운 가족, 형제 자매에 대한 사랑이다. 적은 일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큰 일을 맡기신다. 왜냐하면 적은 일을 행한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20절: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절: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디에서 찾는가? 흔히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특정 교회에서 찾거나 특정한 일이나 직업에서 찾고 있다. 특정한 일이란 교회나 선교지에서 행하여 지는 봉사, 헌신, 희생등을 말한다. 특정 직업이나 목사나 선교사들이 하는 사역을 말한다.

교회나, 특정한 일과 직업에서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가 밖에서 찾아지거나 앞으로 올 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마음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찾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마음에서 그리스도를 찾아야 우리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 .

마음에 그리스도를 어떻게 찾는가?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우리는 욕심과 죄, 자기 중심적인 삶을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 욕심과 죄, 자기 중심적인 삶을 마음에서 찾아서 예수님 발아래 그 마음을 내려 놓으면 우리는 마음에 계신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마음에서 그리스도를 찾으면 예수님은 날마다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마음에 그 분의 말씀을 새겨 주신다.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는 마음, 우리의 삶을 우리가 주장하지 않고 말씀이 이끄는 삶 속에 우리는 매일 하나님 나라를 맛보면서 살게 된다.

성품

성품
창세기 12장 2절

창세기 12장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을 큰 민족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셨다. 큰 민족을 이루려면 아브람이 자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후 25년이 지나서 아들 이삭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한 약속을 이루는데 25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인가? 핸리 블랙가비(Henry T. Blackaby)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아브람보다 한 나라에 더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성품이 후대의 성향을 좌우합니다. 그 조상에 그 자손들이 나오기 마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좋은 품성을 지닌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25년의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빠른 응답을 받기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빨리 받지 못하는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빠른 응답을 주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성품때문이다.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적합하게 반응을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빠르게 응답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우리가 고통없이 기쁘게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빨리 받으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성품을 바꾸지 못한다. 20년 혹은 30년이 지나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도, 그 동창은 초등학교 때 가진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가 성품을 바꾸려면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 우리가 우리의 성품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바꾸려는 성품에 대한 구체적인 기도를 해야 한다. 셋째, 성령님께서 우리의 성품을 바꾸시도록 우리가 기다려야 한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넘쳐 흘러야 우리 속에 있던 악한 성품이 밖으로 흘러나가고, 성령님의 성품으로 채워지게 된다.

기도

기도
빌립보서 4장 6절

빌립보서 4장 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되는 방법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이 기적적인 표적을 주시면 저는 하나님이 제게 말씀하셨음을 압니다. 둘째, 하나니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에서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감지하게 됩니다. 셋째, 올바른 공식을 배워서 그대로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넷째, 저는 성경을 펴서 제가 사용하고 싶은 구절을 뽑아 제 환경에 하나님이 말씀을 갖다 붙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는 두 번째를 정답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 조지 버트릭(George A. Buttrick)은 네 가지 기도의 단계를 말하고 있다. 첫째는 감사, 감사는 구체적으로 감사를 하고, 둘째는 고백이다. 고백은 참회의 기도를 말한다. 그리고 세번째는 중보기도이다. 중보기도가 없으면 기도가 이기적인 기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간구이다. 우리를 보호하는 기도,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이다.

네 가지 단계의 기도를 드리기 전에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일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기도하고 구한 것은 다 받은 줄 아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된다.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전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소원을 이루는 기도

소원을 이루는 기도
빌립보서 2장 13절

빌립보서 2장 13절,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조지 뮬러는 19세기 영국에서 살았던 목사님이다. 뮬러가 세상을 떠날 때 4개의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2,000명의 아이를 돌보았다. 10,000명이 넘는 고아들이 그의 고아원을 통하여 보살핌을 받았다. 그는 기도의 응답을 만 번이나 넘게 받았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여 고아들을 돌볼 수 있는 재원들을 충당했다.

뮬러가 하루 아침에 그의 소원을 이룬 것은 아니다. 뮬러도 많은 기도의 실수를 하였다. 뮬러는 다음과 같이 그의 실수를 고백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있어서 말씀을 통한 성령님의 깨우쳐 주심에 진지하고 참을성 있게 임했던 때를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항상 바른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솔직한 마음이 없었거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지도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않았거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더 존중했을 때, 저는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우리도 뮬러와 같이 우리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진지하게 찾아야 하고, 둘째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실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하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령님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해주기를 원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직한 마음이 없거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거나, 하나님의 뜻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하거나, 하나님 말씀보다 주위 사람의 의견을 더 존중하면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