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에서 한 명까지

열 명에서 한 명까지
창세기 18장 16절~33절

창세기 19장 32절,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마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오늘 아침 운전 면허증과 차량 등록증의 주소를 바꾸려고 AAA(차량국 대행 업무와 보험업무를 하는 보험회사)에 갔다. 집에서 AAA가는 도중에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나지 않고 다니게 해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오후에 아내와 마켓을 가려고 하는데 자동차에 타이어의 공기압이 맞지 않는다는 불이 들어 왔다. 차에서 내려서 자동차 바퀴를 점검하였다. 운전석 뒤에 있는 뒷 바퀴에 못이 있었다. 아침에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나지 않게 해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 드렸는데 오후에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무너진다는 말을 천사에게 들었다. 그 말을 듣자 마자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무너지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시렵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을 하였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의인 50명이 있다면 그 성을 멸하지 않습니까”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 50명이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무너트리지 않겠다”고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신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성에 있는 의인의 숫자를 점점 줄였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10명의 의인이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무너트리지 않겠다” 는 하나님의 대답을 들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여기서 멈춘다.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기도하여 의인 1명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있다면 그 성을 무너트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대답을 받았다면 소돔과 고모라 성은 무너지지 않았을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의인의 간구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결과가 있을 때까지 끝까지 해야 한다. 기도를 중간에 멈춘다면 그 동안 기도한 것이 소용없게 된다.

오늘 아침 타이어 펑크가 나지 않고 다니게 해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했다. 그러나 오후에 감사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게 사탄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사기도로 인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는데… 내일 아들이 필라델피아 의과대학에 면접보러 가는데 아들에게 좋은 일이 많이 있으려나 보다. 감사 기도가 효과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감사기도가 역사하기 때문에 사탄은 감사 기도가 역사하지 않도록 막으려고 하였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10명이 아니라 1명의 의인이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 성을 무너트리십니까’하고 더 기도를 했어야 했다. 기도는 응답이 있을 때까지 쉬지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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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와 손님 대접

풍요와 손님 대접
창세기 18장 1절~15절

창세기 18장 2절~3절, “2절: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절: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요즘 사람들은 개인 중심의 삶을 산다. 공동체 중심의 삶에서 개인 중심으로 살다 보니 개인은 ‘참된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지금처럼 개인이 ‘참된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공동체 중심의 삶에서는 개인의 ‘참된 자아’를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공동체의 원리와 원칙을 따르다 보면 개인의 ‘참된 자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구약은 공동체 중심의 삶이다. 구약 공동체는 지나가는 손님을 잘 대접하였다. 그 전통은 아브라함에서 찾을 수 있다. 아브라함은 손님 대접을 열심히 하였다. 아브라함은 손님을 대접하는 중에 천사를 만나기도 하였다.

오늘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아서 지나가는 손님들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손님들을 그냥 지나가게 하지 않고,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였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손님들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말을 전하였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 아브라함이 극진하게 대접한 손님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였다.

손님 대접하라는 말은 구약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도 적용된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손님을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13장 2절,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우리도 손님을 대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천사를 대접하게 된다.

손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넉넉하게 산다. 우리도 모르게 천사를 대접해서 넉넉하게 사는가? 아무튼 복은 나누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해 진다. 어떤 목사님이 “목사님들이 가난하게 사는 이유를 아는가?”하고 내게 물었다. “남을 대접하는데 가장 인색한 분들이 목사님이다. 그러기 때문에 목사님들이 가난하게 산다. 남을 풍성하게 대접하는 목사님들은 가난하지 않다”고 그 목사님은 내게 친절하게 답도 주셨다.

주님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 말씀 속에 답이 있다. 문제를 발견하고 비판하기는 쉽지만, 문제에 대한 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부족하지 않고, 약속을 이루면서 사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개인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공동체 안에 숨어 있는 놀라운 비밀을 오늘 전하여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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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말에 따라 흘러가는 인생

듣는 말에 따라 흘러가는 인생
창세기 17장 15절~27절

창세기 17장 15절,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집에서 LA 에 있는 신학교로 나갔는데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전에 있는 집과 10km정도 LA와 더 멀어졌는데 더 오래 운전하는 것 같았다. 10년 동안 몸이 집에서 LA까지 거리는 얼마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LA로 가는 시간이 길고 지루했다.

오늘 말씀은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바꾸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사라라고 이름을 하나님께서 바꾸어주셨다. 99년 동안 아브람으로 불리었는데 하루 아침에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람들에게 불리게 되었다. 90년 동안 사래라고 불리었는데 이제부터 사람들은 사래를 사라라고 불렀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부를 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이름에 어색하였을 것이다.

새로운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가? 새로운 이름은 이제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아 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담겨진 이름이다. 아브람은 ‘큰 아버지’에서 아브라함의 ‘열국의 아버지’로 살게 될 하나님의 뜻이 담겨진 이름이었다. 사라는 사래의 ‘여 주인’에서 사라의 ‘열국의 어머니’로 새로운 삶을 살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을 표현한 것이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름만 바뀌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이제부터 전혀 다른 존재로 살아갈 것이고, 지금과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이름은 그들의 삶과 인생을 바뀌어 놓을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의 가까운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그들의 인생과 삶은 흘러갈 것이다. 또한 우리가 무슨 말을 듣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과 인생도 흘러갈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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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거울

내면의 거울
창세기 17장 1절~14절

창세기 17장 1절,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사할 때 옛날 TV를 들다가 손목에서 ‘뿌지직’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왼쪽 손목을 잘 쓰지 못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조심해야 하는데 아직도 젊다는 생각에 손목에 무리가 되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아내가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셨기 때문에 손목을 다치게 하셨다고 말한다. 아내의 말은 손목이 다치지 않았다면 허리를 더 심하게 다쳤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내의 말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구십 구세에 다시 나타나셨다. 아브람이 사래의 여종 하갈을 아내로 맞이한 후에 10년이 넘게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다. 아브람이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아들을 낳자, 3년에 한 번씩 나타나시던 하나님께서 10년이 지나도 그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침묵을 깨시고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내 앞에서 완전히 행하라”는 말씀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완전한 순종을 원하셨다. 99%의 순종이 아니라 100%의 순종을 원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아브람이 해야 할 것이 말씀에 따른 100% 순종이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100% 순종을 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그 시대에 살던 습관이나 행동, 태도, 생각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하기 어렵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익숙해진 삶의 태도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씀에 따라 삶의 방식과 태도, 행동을 스스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100% 순종은 어렵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게 하기 위하여 아브람과 그에게 속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할례를 명하셨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그의 자손과 맺은 언약의 징표였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약속은 온전한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이 아닐까? 또한 온전한 순종을 위하여 눈에 보이는 징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을 통하여 보는 우리의 삶은 은혜이다. 그러나 우리를 통하여 보는 우리의 삶은 불평과 불만 뿐일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매일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있을 때, 우리의 내면이 변화되어 100% 순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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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댓가

약속의 댓가
창세기 16장 1절~16절

창세기 16장 3절,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내일(5일) 이사를 한다. 10년 동안 La Mirada에 살았는데 Fullerton으로 이사를 간다. 새로 이사가는 집에 인터넷을 신청을 했는데 다음 주 화요일(9일)에 인터넷을 설치한다. 5일 동안 인터넷이 되지 않아서 글이나 설교를 올리지 못할 것 같다.

오늘 말씀은 아브람 아내 사래가 아브람에게 사래의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었다. 아내가 자녀를 낳지 못하면 아내의 몸 종을 남편에게 주어 자녀를 낳게 하는 고대 근동의 풍속이 있었다. 아브람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 행하여지는 풍속을 따라 아내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맞이하였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화근이 되는 일이 되었다.

여종 하갈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녀의 아들 이름은 이스마엘이다. 이스마엘은 이슬람교를 믿는 중동 사람들의 조상이 된다. 이슬람교를 믿는 중동 민족들과 구약을 믿는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도 서로 적대적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여 지불해야 하는 댓가치고 너무 크다.

우리에게 전해주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지기 위하여 ‘인내’라는 댓가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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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이유

선택의 이유
창세기 15장 12절~21절

창세기 15장 13절~14절, “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 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니 나무들이 생명을 얻고, 생명을 얻은 나무가 내뿜는 공기로 인하여 주변이 상쾌해 졌다. 거리에 있던 먼지들은 비로 씻기어 깨끗해 졌다. 가뭄에 시달리던 캘리포니아가 생기를 얻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아브람의 자손들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이방인들을 섬기겠고, 이방인들은 사백 년 동안 아브람 자손을 괴롭힐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사건들은 창세기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는 사건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야곱과 그의 아들과 가족 모두가 애굽으로 가게 되었고, 요셉이 통치하던 30년을 제외한 나머지 400년의 기간 동안 애굽의 종살이로 지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언이란 말을 미래에 있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언은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 모두가 예언이다. 예언을 영어로 foretell인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이야기’란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이 예언이고, 예언은 미래에 이루어질 말씀일 수도 있고, 과거에 이루어진 말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 이루어진 말씀이더라도 지금 다시 이루어질 수 있고, 미래에 또 다시 이루어질 수 있는 영원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들이 애굽에 종살이 하는 이유를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차지 아니함이기(창15:16)”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모리 족속들이 죄악이 가득 차기 전에 아브람 자손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하여 아브람을 선택하신 것인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선택하신 이유는 아브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아브람이 다른 사람보다 의롭게 여겨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모리 족속들의 죄악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죄악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아브람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선택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같은 원리로 선택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우리가 선택된 이유는 우리가 선해서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변이 너무 악해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다. 악한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죄악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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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 두려움

약속과 두려움
창세기 15장 1절~11절

창세기 15장 10절,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대통령 후보들은 저마다 자기의 공약을 국민들에게 내놓는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뽑을 때 후보의 자질과, 그들이 내어 놓은 공약을 살핀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때 내놓은 공약이 대통령이 되어서 지켜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통령 후보 때의 환경과 대통령이 되고 나서의 환경이 달라져서 약속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서로 약속을 하지만 약속을 지켜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서로를 원망하기도 하고, 서로가 미워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약속을 지킬 의지가 없거나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아브람은 심하게 두려워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브람이 무엇 때문에 두려워했을까?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민 온 이민자였다. 이민자들이 가지는 두려움이란 주변 적들에 대한 두려움, 혼자 있는 두려움, 버려지는 두려움 등이 있었다. 아브람이 가졌던 두려움은 큰 전쟁 뒤에 겪는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아브람을 위로하셨다.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는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브람은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자녀를 셀 수 없이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음에 대한 아브람의 원망이 섞여 있는 대답이었다.

아브람은 그의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가? 고대 근동에는 주인이 상속자가 없을 때 종이 그 상속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아브람이 “나는 자식이 없으니 나의 상속자를 종인 엘리에셀로 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하오니 허락해 달라는 의도가 있는 말이기도 하였다. 또한 아브람이 하나님에 대한 약속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아브람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믿음을 아브람의 의로 여겼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은 생명의 건 약속임을 아브람에게 보여주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와서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았다.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의 약속은 목숨처럼 지켜질 것을 보여주셨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쪼개 놓은 암염소나 숫양,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처럼 될 것이라는 상징이 담긴 약속이었다. 그러나 약속을 이루게 하지 못하는 솔개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을 행하여야 할까? 하나님께서 약속을 행하실 의지나 능력이 없어서 약속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행하여야 하는 것은 믿음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믿음대로 행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믿음으로 행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없어야 한다. 믿음대로 행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두려움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쫓아내야 믿음대로 행할 수 있다.어떻게 두려움을 쫓아낼 수 있는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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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주는 은혜

두려움이 주는 은혜
창세기 14장 17절~24절

사람들은 걱정을 달고 산다.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면서 좋은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영주권이 없으면 영주권이 없어서 걱정을 하고, 영주권이 있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아브람은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으로부터 롯을 구하고 나서 걱정과 두려움에 쌓여 있었다. 한 지방에 왕과 그의 연합군을 쳐부수었으니 그들이 언제 아브람을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관계 지향적인 아브람이 앞뒤 구분 없이 롯을 구하겠다는 생각에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을 공격하여 롯과 그의 가족, 친척과 재산 모두를 되찾아 왔지만, 이제 아브람은 연합군의 보복이 두려워졌다.

법정에 증인을 선 증인들은 범인으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다. 그래서 나라마다 증인 보호제도가 있다. 법정에서 피의자가 범인이다라고 말하는 증인을 보호하는 제도이다. 증인을 보호하는 이유는 피의자가 피고인이 되어 범인으로 확정이 되면, 범인으로부터 증인이 해를 당하지 않도록 국가에서 증인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쌓여 있던 아브람에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나타났다. 어떤 신학자들은 멜기세덱이 ‘인자’의 현현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나타나신 현상을 종종 기록하고 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아서 풀무불에 던져졌다. 풀무불에 ‘세 사람’이 던져졌는데 ‘네 사람’이 풀무불 속에 있는 것을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신하들이 보았다. 느부갓네살 왕은 “네 사람이 불 가운데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단3:25)”하고 소리친다. 어떤 구약 신학자들은 ‘신들의 아들’을 인자의 현현이라고 해석한다.

아브람은 멜기세덱을 만나 아브람이 얻었던 전리품 가운데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 드렸다. 그리고 아브람은 소돔 왕에게 “소돔의 것들은 소돔으로 돌려 보내겠다”고 말하고, 소돔의 것들은 소돔에게 돌려 주었다. 아브람은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나서 더 이상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의 침입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고, 소돔의 것을 소돔에 돌려 보냄으로 소돔 왕의 연합군과도 친하게 진할 수 있었다.

우리도 살다 보면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보를 때가 있다. 두려움은 걱정과 근심을 낳는다. 걱정과 근심으로 불안할 때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그 분께 드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예수님께 드리면 우리의 걱정과 근심은 사라진다.

예수님을 잘 모르거나 성경의 뜻을 모를 때는 걱정과 근심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마음에 와 닿지 않을 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드린다는 것은 ‘걱정과 근심’이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마음으로 계속해서 예수님께 드리는 행위를 반복(걱정과 근심이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우리의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예수님이 주시는 더 큰 놀라운 은혜를 맛보게 된다는 말씀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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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같은 겨울

여름 같은 겨울
창세기 14장 1절~16절

창세기 14장 16절,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12월이 되었는데 겨울이 여름처럼 덥더니 어제는 비가 장대같이 내렸다. 이번 주 수요일(3일)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고 한다. 비 때문에 이사 날짜를 12월 2일에서 12월 5일로 연기하였다.

롯이 아브람을 떠나 소돔과 고모라 성에 거하였는데 그 곳에 전쟁이 일어났다. 소돔과 고모라 왕의 연합군과 그돌라오멜 왕과의 연합군과 전쟁이었다. 소돔과 고모라 왕의 연합군이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에게 패하였다. 소돔과 고모라 왕의 연합군이 전쟁에서 패하니 그 곳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에 잡혔고, 그의 재산, 자녀, 친척, 가축들 등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에 빼앗겼다.

조카 롯이 그돌라오멜 왕에게 붙잡혀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쟁에서 도망쳐온 히브리인을 통하여 아브람이 알게 되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이 사로 잡혔음을 듣자마자, 집에서 기르고 훈련한 사병 삼백십팔 명을 데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을 쳐부수고, 조카 롯과 그의 가족, 친척, 재산 모두를 찾아 왔다.

축복의 근원인 아브람을 떠난 롯의 삶의 결과가 어떠한지 창세기 14장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것은 아브람을 떠난 것이 아니라, 아브람과 함께 한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난 롯의 삶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지, 아니면 세상과 함께 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우리의 환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최근 일주간은 겨울인데도 여름과 같은 날씨를 보였다. 이상기온과 날씨, 지각변동, 지진, 쓰나미 등의 이상적인 환경 변화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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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과 같이 단단한 마음

철과 같이 단단한 마음
창세기 13장 14절~18절

창세기 13장 15절~16절, “15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절: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비행기 속에 미국을 여행하는 어머니와 아들을 만났다. 그들은 옆자리에 앉았다. 아들은 대학에서 글로벌 인재육성 팀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미국 출장 길에 어머니와 함께 하였다. 아들은 어머니를 위하여 여행 계획을 세웠고, 어머니가 좋아할 일들도 구상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그러한 모습에 더 큰 사랑을 주었다. 어머니와 아들의 허물없는 모습을 본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였다.

롯이 아브람의 곁을 떠난 후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 고향을 떠나 지금까지 함께하였던 조카 롯이 아브람을 떠나자 아브람의 마음은 허전하였다. 하나님은 허전한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아브람을 위로하셨다. 하나님의 위로는 약속이었다. 하나님은 고향에서 들려주었던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람에게 다시 들려줌으로 아브람을 위로하였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의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13:15-16)”. 하나님과 대화가 아브람을 위로하였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면서 아브람의 영성이 자라기 시작하였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이 된다. 관계는 대화를 통하여 형성된다. 그러므로 영은 하나님과 대화를 통하여 자라게 된다.

하나님과 모든 대화가 영성을 자라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솔직하여야 영이 자란다. 하나님과 대화 속에 숨기는 것이 있다면 영이 자랄 수 없다. 육신의 약함과 부정적인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들어낼 때 영이 자라기 시작한다. 하나님과 솔직한 대화가 영을 자라게 한다.

하나님과 솔직한 대화를 할 때는 언제인가? 아브람이 하나님과 솔직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때는 아브람이 스스로 약하다고 인정할 때이다.  아브람이 외로울 때, 아브람이 환경으로 두려워 할 때, 즉 아브람이 약할 때 아브람은 자신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들어냈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솔직한 모습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아브람과 대화를 하셨고, 아브람이 하나님과 대화할 때 아브람의 영은 자랐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솔직한 대화를 잘 하지 못한다. 하나님과 솔직한 대화를 하려면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하나님께 들어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하나님께 들어냈다고 착각하면서 산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솔직하게 들어내지 못하고 산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낼 수 있다면 하나님께 솔직하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솔직하게 자신을 들어내어서 자신을 치유한 사람들만이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내면의 있는 부정적인 철을 용광로 속에 녹여야 할 것이다. 환경이 어려울 때 우리의 마음은 철과 같이 단단해진다. 단단해진 마음의 철은 하나님 앞에 솔직해져야 녹일 수 있다. 그러나 단단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감추면 단단한 마음이 더 단단해진다. 철과 같이 단단해진 마음을 녹이는 방법은 내면에 우리의 부정적인 모습을 인정하고, 부정적인 모습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들어낼 때 단단한 마음이 녹게 된다. 단단한 마음이 녹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이 자라게 되고, 영이 자라게 되면 자연스럽게 환경적인 문제도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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