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이 아닌 선으로 대하는 법

악이 아닌 선으로 대하는 법
베드로전서 3장 8절~12절

베드로전서 3장 8절~9절, “8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절: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세상은 힘은 힘으로, 한 대 맞으면 한 대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신자가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으려해도 상대가 선을 악으로 갚으면 저도 모르게 신자도 악해진다. 그래서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어떤 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기 원하는 자는 자기 혀를 악으로부터 지키며, 자기 입술로 거짓을 행하지 말라(벧전3:10절 참조)”고 한다. 미래에 소망을 가지면 신자는 악을 악으로 대하지 않고 욕을 욕으로 갚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신자가 미래의 소망을 갖기 위하여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고, 화평을 추구하여(벧전3:11절 참조)”야 한다. 신자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고 추구할 때 미래의 소망을 잡을 수 있다.

어떻게 신자가 악에서 떠날 수 있는가? 신자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겠다는 결단을 할 때 악에서 떠날 수 있고, 신자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선을 행하게 되고, 그리고 신자가 이웃과의 화평을 구할 때 이웃과 화평을 추구하게 된다. 즉 베드로전서 3장 11절은 신자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사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웃이 우리에게 악을 행할 때 우리는 화를 낸다. 화를 내는 이유는 우리의 동물적인 감각신경들이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적을 경계하는 모습이 화를 내는 모습으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적인 모습은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진 동물적인 모습에 대한 알아차림’은 우리가 주님이 걸으신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고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할 때 알게 된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을 깨달으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동물적인 모습은 주님의 영으로 덮히게 된다. 그때 우리는 악이 아닌 선으로 대하게 된다.

세상을 넘어가는 방주

세상을 넘어가는 방주
베드로전서 3장 1절~7절

베드로전서 3장 1절, 7절, “1절: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7절: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내의 행실로 남편을 구원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남편의 행실로는 아내를 구원하지 못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남편은 아내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귀하게 여기려면, 남편은 아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남편이 아내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남편은 기도를 할 수 없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여 남편을 구원 받게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남편이 아내를 구원 받게 한다고 오늘 본문 말씀은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엡5:23,25 참조). 즉 아내와 남편이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서로 소통할 때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 말씀은 남편이 아내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말로 사용되서는 안된다. 또한 아내가 남편에게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고 명령하는 말도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내에게 남편에 대한 순종을, 하나님이 남편에게 아내를 귀하게 여기라는 명령이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대로 아내와 남편이 서로 순종하고 사랑하면 우리 가정은 구원의 방주가 된다. 아내와 남편과 그리스도와 교회와 같이 서로 연합한다면 우리의 가정은 세상의 어떠한 거친 파도도 넘어가는 구원의 방주이자,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방주가 된다.

부당한 고난

부당한 고난
베드로전서 2장 18절~25절

베드로전서 2장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는 신자에게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없다(벧전1:19-20 참조)”라고 말한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답고, 또한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베드로는 신자에게 말하고 있다. 부당한 고난은 신자만이 겪는 일이 아니고 예수님도 겪었다고 베드로는 말하면서 신자도 세상에서 부당한 고난을 겪는다고 말한다, “예수님도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도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으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2:23).”

베드로전서를 쓴 로마시대에는 박사들, 의사들, 음악가들, 선생들, 예술가들이 전쟁 포로로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이 주인으로부터 부당하게 대우를 받기도하고, 그들의 주인은 로마법을 어겨가면서 그들을 학대하기도 했다. 부당하게 대우를 받은 그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을 위로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하는 부당한 고난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당하는 부당한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게 하고(벧전2:20 참조), 이제 예수님은 너희들의 목자가 되셨으니 너희는 안심해도 된다(벧전2:25 참조). 악한 주인으로 인하여 너희들의 몸이 상하더라도 하나님이 너희를 끝까지 보호하고 계시고 너희를 부당한 고난에서 건지신다(벧전1:5, 2:19 참조)”고 베드로는 부당한 고난을 당하는 신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오늘 말씀은 세상의 부당한 제도나 권세자들때문에 우리가 부당한 고난을 받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지 그 방법을 제시해 준다.

주님의 당부

주님의 당부
베드로전서2장 9절~17절

베드로전서2장 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는 신자들이 택한 족속이고, 거룩한 나라의 제사장이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 전서에거 말한 신자들, 즉 ‘너희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말한다. ‘택한 족속’이란 참된 신자이고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한다. ‘거룩한 나라의 제사장’이란 영적인 나라의 ‘영적인 제사장’을 말한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유업’을 받게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둠 가운데에서 불러 기이하고 놀라운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셨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백성이 되었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받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다.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부탁하시는 일이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선을행하는 일’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선을 행한다 함은 세상의 제도나 권력때문에 우리가 고난을 당하더라도 선으로 대하라는 주님의 당부이다. 이러한 주님의 당부는 우리를 힘들고 곤란하게 만들때가 많다. 그러나 주님의 당부를 따라 행한다면 세상사람들이 달라지고 주님이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영이 자라려면

영이 자라려면
베드로전서 2장 1절~8절

베드로전서 2장 2절,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the sincere milk of the word)’을 사모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순전하고 신령한’의 뜻을 King James Version에서는 ‘sincere’로 번역하고 있다. ‘sincere’라는 뜻은 ‘순수하다’다라는 뜻으로 다른 것들이 섞이지 않는 상태를 말하고 있다.

오늘 말씀은 갓난 아이들에게 젖을 먹여 본 어머니들이 젖을 먹여 보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쉽게 이해를 한다. 갓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젖을 향하여 달려 들며, 젖을 물고 배가 다 찰 때가지 젖을 놓지 않는다. 갓난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에 다가가야 주님의 인자함을 맛보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벧전2:3).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랑하는 모습을 에베소서 4장 14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는’이 가르키는 말은 앞 절의 말인데 ‘하나님을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는 일’을 말한다.

우리가 자라라면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을 담고 있는 세상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렸던 영적 제물(벧전2:5)’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렸던 ‘영적 제물’은 무엇인가? 아들이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아버지를 신뢰하고 순종한 모습, 즉 ‘십자가의 순종’을 말한다.

우리의 영이 자라려면 세상의 거짓된 가치관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어야 한다. 우리의 영이 자란다는 뜻은 ‘말씀을 아는 지식과 믿는 마음’이 하나됨을 말한다. 우리의 영이 자랄 때는 우리가 어려울 때이다. 어려울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끝까지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끝가지 붙들고 있는지를 보면 우리의 영이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원을 향한 변화

영원을 향한 변화
베드로전서 1장 22절~25절

베드로전서 1장 22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는 뜻은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혼을 정결케 하신다”라고 King James Version은 번역한다(Seeing ye have purified your souls in obeying the truth through the Spirit unto unfeigned love of the brethren, see that ye love one another with a pure heart fervently).

베드로는 우리가 성화(sanctification)된 삶을 살기 위하여 네 단계를 거친다고 말한다. 첫째, 우리 마음의 허리를 동여 근신하는 단계(벧전1:13),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반영하는 단계(벧전1:14-15), 셋째, 우리가 구원의 감격과 함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마음을 갖는 단계(벧전1:17),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우리를 정결케 하셔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벧전1:22-23) 단계를 거친다.

신학적인 용어로 ‘성화된 삶(sanctified life)’라고 말했지만 ‘변화된 삶(transformed life)’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된 삶이란 근본적인 변화를 말한다. 일반적인 변화(changed life)는 태도나 외형적인 형태의 변화를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변화(transformed life)는 본질적인 변화가 동반한 외형과 태도의 변화를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결단 할 때 성령님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이 말하는 말에 동의하면서 산다고 결심할 때에는 성령님은 우리를 도울 수 없다.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에 따라 살려는 결단을 할 때, 우리를 변화(transformation)시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어 주신다. 우리가 변화되어야 들에 꽃이나 풀과 같이 마르지 않고 영원한 존재가 된다.

두려움 없는 사랑

두려움 없는 사랑
베드로전서 1장 13장~21장

베드로전서 1장 17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요즘 교회는 ‘은혜’와 ‘사랑’을 외친다. 예전에는 ‘진리’와 ‘말씀’을 교회가 외쳤다. 교회가 외치는 소리가 달라지자 교회 내에 환경이나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히 교인들이 바라보는 하나님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다.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받아주는 하나님으로 교인들은 지각한다. 그리고 예전에 길거리에서 전도를 위하여 외쳤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시지 않고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나그네로 있는 이 땅에서 ‘두려움’을 가지라고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이 두려움은 강도가 칼로 사람을 위협할 때 생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강도가 재판장 앞에 있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교인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따라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말씀 기억하면 우리가 거룩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해지기 때문이다(딤전4:5).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두려움 없는 사랑은 값싼 은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난을 이길 힘

고난을 이길 힘
베드로전서 1장 8절~12절

베드로전서 1장 11절,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라.”

고난을 통하여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벧전1:8). 믿는 자들은 고난을 통하여 보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그 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하게 된다. 여기서 영광이 가득한 기쁨은 무엇인가? 영광이 가득한 기쁨은 구원의 감격을 말한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충만한 기쁨으로 사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의 은혜를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cf 벧전1:10). 그들이 믿음의 선지자들이 말한 구원의 은혜를 조사하고 탐구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영광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나타나는지 알게 된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기쁨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당하는 고난 때문이다. 우리가 당하는 오늘의 고난이 언제 끝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우리 중에서 오늘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오늘을 살 바에는 빨리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다. 그러나 그 분들이 구원의 은혜를 말한 선지자들을 연구하고 조사하면 오늘 당하는 고난의 끝을 알 수 있다. 그 분들이 고난의 끝을 알게 되면 고난 뒤에 나타나는 영광을 보게 된다. 구원의 영광을 우리가 오늘 보게 되면 오늘의 고난을 이길 힘을 성령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다.

하나님의 도구

하나님의 도구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베드로전서 1장 4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믿는 사람이 받을 상속의 유업은 하늘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미래의 보상보다 현재의 보상을 원한다. 현재에 보상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장애요소가 있는데 믿는 사람들이 지금 시험으로 겪게 되는 근심이다. 사람들이 믿어서 지금 편하게 되어도 믿을까 말까 하는데 믿는 사람들은 시험으로 근심을 겪게 된다(벧전1:6).

믿는 사람들이 지금 여러가지 시험을 받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한다(벧전1:7). 믿는 사람들이 시험을 당하는 이유가 있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거듭났기 때문이고, 거듭난 우리가 산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귀들은 우리가 가진 산 소망을 빼앗으려고 우리를 시험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험을 통하여 우리가 더 존귀해지게 만드시고, 우리가 받을 하늘의 유업을 더 키우신다.

우리가 시험을 당하여 지금 근심하고 있지만 성경은 시험을 당해도 우리가 근심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벧전1:5). 우리가 시험을 당해 근심해야 할 일이 있다면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연약한 믿음은 우리를 근심하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연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산 소망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당하는 시험은 산 소망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이다.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해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해
베드로전서 1장 1절~2절

베드로전서 1장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사도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에게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은 너희들을 이미 아셨고, 성령을 통하여 너희를 거룩하게 구별하셨고, 너희들을 순종하게 하셨고, 너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선택받게 하셨다.” 나그네는 정한 나라도 없고, 정하여 살 곳도 없이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남유다를 멸망한 후에 나라 없이 여기 저기 떠돌아 다녔다. 떠돌아 다닌 나그네에게 남아 있는 소망이 있다면 메시아가 오시면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서 정착하여 사는 일이다.

베드로는 메시아가 나그네에게 오셨고,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나그네들에게 말한다. 눈에 보이는 땅에 정착하지는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 하늘에 정착하였다고 베드로는 나그네들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우리에게 주님은 약속하신다,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아 선택을 받았고, 선택 받은 너희는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병신년은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우리를 선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은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넘치도록 주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