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우리

연약한 우리
마가복음 5장 41절

마가복음 5장 41절,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일으키시는 장면이다. 달리다굼이란 달리다의 뜻은 연약한, 나약한이란 뜻이다. 굼은 일어나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을 “연약한 자여 일어나라”는 뜻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연약한 자의 마음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마음이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다(마5:3)”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심령이란 영혼을 말한다. 물질이 없어 가난한 자가 아닌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말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에 영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들이 영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연약함을 보셨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연약한 소녀라고 보신 이유는 아버지인 야이로의 심령을 보셨기 때문이다. 야이로는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마음이 연약하여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를 떠나려고 하였다(막5:35참조). 그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야이로에게 말씀하셨다.

마귀는 우리가 연약한 모습 그대로 주님께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마귀는 두려움을 우리에게 주어 우리가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두려움은 참된 우리의 모습이 아닌 가면을 쓰고 우리가 살아가게 한다. 두려움은 우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떠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가면을 벗고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가면,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하고 일어나게 하신다.

마음의 질문

마음의 질문
시편62편 1절

시편 62편 1절,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가다 보면 길이 막혀서 헤메일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주님의 거울 앞에 우리를 비추어 본다. 거울을 비추어 보면서 ‘우리가 뭘 잘못했지? 무엇때문에 일이 이렇게 엉키게 되었지?’ 하는 질문을 주님께 해 본다.

다윗도 마음 속에 품은 질문을 주님께 드렸다. 시편62편 3-4절에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질문),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답).” 다윗은 마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았다. 아마도 다윗의 질문에 주님이 직접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잠잠히 주님만 바라보라고 다윗은 자신의 마음을 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으로 질문을 주님께 하여도, 주님은 그 답을 알려주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오늘 말씀은 우리 마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성경은 우리가 가만히 주님만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가 답을 찾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고독의 비밀

고독의 비밀
요한일서 4장 1절

요한일서 4장 1절,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서 나왔음이라.”

성경은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를 분별하라고 말씀하신다.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라는 뜻이다. 말씀에 근거에서 자신을 돌아 볼 때 우리는 진리와 거짓을 구별할 수 있다. 디트리히 본 히퍼(Dietrich Bonhoeffer)는 “우리는 침묵을 너무 두려워하는 나머지, 자기 자신과 홀로 있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지 않기 위해서, 이 일에서 저일로 자신을 몰아친다”라고 말했다.

홀로 있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가 홀로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홀로 있도록 몰아부치실 때가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우리가 사방으로 고립의 벽에 둘러쌓을 때 우리는 홀로 있게 된다. 우리가 홀로 남았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시는 때이다. 고립은 고독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사인이다.

고독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진리와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의도적으로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고독은 하나님과 사랑을의 교제를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고독으로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독 가운데 유혹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우리를 방해를 한다. 예수님도 40일동안 혼자 사막에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하였지만 동시에 마귀로부터 시험을 당하셨다(마4:1).

하나님은 고독 가운데 우리를 부르신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2:13).” 고독 가운데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만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고독 가운데 우리가 거짓을 버려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침묵 속에 기다림

침묵 속에 기다림
하박국 2장 20절

하박국 2장 20절,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정보화 시대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잠잠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스마트 폰이나 아이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음악을 듣기도 하고, T.V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특히 한국에서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은 모두 다 통신기기에 집중하여 옆에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우리가 아무 말 없는 조용한 곳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는 그러한 침묵을 불편해 한다. 또한 누군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기다리라고 우리에게 말한다면 그러한 상황은 우리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조용히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이 세상 속에 떠돌아다니는 말들 정리하기를 주님은 원한다. 우리가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분별하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우리가 세상에 방해 받지 않고 오로지 주님만 바라볼 때 우리는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주님께 조용하고 잠잠한 시간을 드릴 때까지 주님은 우리를 침묵 속에서 기다리신다.

은밀한 비밀

은밀한 비밀
누가복음 8장 56절

누가복음 8장 56절,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회당장인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난 후에 딸의 부모에게 딸이 죽어 살아난 일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야이로와 그의 아내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지켰다. 오늘 말씀 이외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몇 차례 말씀하셨다(막1:44; 9:9; 눅8:56). 야이로와 그의 아내가 예수님의 비밀을 알고 나눌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작은 믿음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선한 일을 할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3-4).” 선한 일을 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선한 일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만, 다른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한 사람을 모르면 선한 일을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과 그분의 은밀한 비밀을 나누기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은밀한 비밀을 알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와 은밀한 교제를 통하여 예수님의 은밀한 비밀을 알려주신다. 우리가 주님과 나누는 은밀한 비밀이 바로 주님과 나누는 은밀한 교제이다. 주님은 우리의 동기와 의도를 다 아신다. 우리의 동기가 그리스도의 사랑이고(우리가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비밀을 다 알고 싶어한다), 그리스도의 사랑때문에 주님과 은밀한 비밀을 나누기 원할 때 주님은 주님의 비밀을 우리에게 드러내신다.

우리 마음이 향한 곳

우리 마음이 향한 곳
로마서 8장 5절~6절

로마서 8장 5절~6절, “5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리스도인이 되면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의 싸움이 시작이 된다. 바울도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원하지 않는 일을 바울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육신의 생각이고, 육신의 생각은 죄라고 바울은 말한다(롬7:20 참조).

바울은 고린도전서2장과 3장에서 사람들을 세 종류의 사람으로 나눈다. 육에 속한 사람(고전2:14), 신령한 자(고전2:15), 육신에 속한 사람(고전3:3)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들 중에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성령을 쫓아 사는 신령한 사람과 육신을 쫓아 사는 육신의 사람들이다.

육신을 쫓아 사는 육신의 사람들은 모든 생활의 영역, 즉 개인, 가정, 교회, 사회에서 육신을 쫓아 살게 된다. 그러나 성령을 쫓아 사는 신령한 사람들은 모든 생활 영역을 그리스도께 의지하면서 산다. 육신의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시기와 다툼과 분쟁과 미움이 끊어지지 않아서 그들의 마음은 변화가 없지만 신령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화되어 그들의 마음은 그리스도를 닮아간다.

육신의 사람들은 행동으로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는 듯 보여도 그들은 그들 속에 있는 육신의 욕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 뿐이지만, 신령한 사람들은 겉으로 건성 건성 행동하여 신앙이 없는 사람들 같이 보여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외모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은 우리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다. 우리 마음이 향한 곳이 우리의 욕심과 필요를 향하고 있다면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더라도 우리는 육신의 사람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향한 곳이 그리스도라면 우리의 헌신이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신령한 사람이 되고 있다.

마음을 다하는 기도

마음을 다하는 기도
마태복음 6장 9절

마태복음 6장 9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 즉 주기도문은 동네 아저씨에게 부탁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청하는 기도이다.

우리가 아버지에게 청하는 기도에는 여덟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부른다(마6:9).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경의를 표한다(마6:9). 셋째, 우리는 자신과 지구 상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음을 인정한다(마6:10). 넷째, 우리는 하나님께(사람이 아닌) 우리의 필요와 부족을 채워달라고 구한다(마6:11). 다섯째,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마6:12). 여섯째, 우리는 하나님께(부모나 자녀가 아닌) 우리를 돌봐달라고 간청한다(마6:13). 일곱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관하심이 가장 큰 소망임을 고백한다(마6:13). 마지막으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음을 고백하고 기도를 마친다(마6:13).

우리가 드리는 주기도문은 마음을 다하는 기도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준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드리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기도이다. 하루 하루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도를 반복하여 마음을 다하여 우리가 고백한다면, 주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지게 된다. 이는 주기도문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의 모범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이기 때문이다.

단순함의 비밀

단순함의 비밀
마태복음 6장 19절

마태복음 6장 19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애들 알버그 칼훈(Adele Ahlberg Calhoun)은 ‘영성훈련 핸드북’에서 오늘 말씀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이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경험들은 사실은 다 필요한 것들이 아님을 우리가 알기 원하신다.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 즉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를 제1순위로 지키는 일이다.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면 인생은 훨씬 더 단순해진다.”

이 말은 우리의 목표가 한 가지일 때 우리의 삶이 단순해 진다는 말이다. 우리의 목표가 한 가지라는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포도나무에 거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 포도열매를 맺게 된다.

두 가지 이상의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삶이 복잡하다. 예를 들면 삶이 복잡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고, 정신적으로도 만족도 얻고 싶고, 육체적으로도 쾌락도 누리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얻고자 한다고 다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계획할지라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시간이 오래되면 될수록 우리의 삶은 단순해진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들 중에 하나이고, 그리스도의 비밀들 중에 하나는 단순함의 비밀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여러 갈래의 길이 아닌 한 길이고, 그 길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살면 삶은 더 복잡해지지만, 우리가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맡기면 우리의 삶은 점점 단순해진다. 우리의 삶이 단순해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 분은 온전한 기쁨과 평강을 우리에게 주신다.

흘러 보내야 할 것과 간직할 것

흘러보내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
히브리서 2장 1절

히브리서 2장 1절,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사람들에게는 버려야 할 것들과 간직해야 할 것들이 있다. 버려야 할 것들을 간직하고, 간직해야 할 것들을 버리게 되면 마음은 쓰레기 통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간직해야 할 것을 간직하고,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게 되면 마음은 귀한 박물관이 된다.

목회를 하면서 과거의 아픈 사건, 추억, 기억들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성도들을 보아왔다. 그들은 현재를 살면서 과거의 기억 속에 살고 있었다. 그분들의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까지 연결이 되어 그분들의 삶에 발목을 잡고 있었다.

반대로 성도들 중에는 붙잡아야 할 것들을 버리는 분들도 보았다. 오늘 말씀은 들은 말씀이 흘러내려가지 않도록 하라고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다. 성도들이 의도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간직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말씀은 마음에 담기지 않고 흘러갈 위험성이 있다는 경고이다.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 옛 상처나 고통들이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과거의 아픈 상처가 우리를 아프게 한다. 우리가 과거의 아픈 사건, 추억, 기억들을 흘러보내야 마음이 치유가 된다. 마음이 치유가 되려면 우리가 과거의 상처를 말씀으로 재해석하고, 우리가 아픈 상처를 경험하게 된 이유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다시 해석이 되어야 상처를 흘려보낼 수 있다. 우리가 아픈 상처를 흘려보내면,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를 간직하게 된다.

새 날의 의미

새 날의 의미
골로새서 3장 16절

골로새서 3장 16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디이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신도의 공동생활’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하루는 다르게 시작한다고 말하였다. 구약의 하루는 저녁에 시작하여 다시 해가 지는 저녁으로 끝을 낸다. 그러므로 구약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때를 의미한다. 그러나 신약은 해 뜨는 새벽에서 시작하여 동트는 새벽이 올 때에 하루를 끝낸다. 하루가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는 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승리하신 부활의 때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밤에 오셔서 어두움 가운데 빛을 비추는 빛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운명하셨을 때 세상은 밤이 되었다. 세상이 온전히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어두운 세상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빛은 승리자가의 빛이다. 종교 개혁 때에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다음과 같이 노래 하였다. “해가 솟아 오르는 이른 아침, 나의 구주 그리스도가 일어나시어, 죄의 밤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시니, 주는 우리에게 빛과 기쁨과 생명이 되어 다시 오셨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자들는 의로운 태양으로 떠오르게 된다(말4:2 참조). 우리도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면, 우리는 힘차게 솟아오르는 의로운 태양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다리는 새 날은 죽음과 마귀와 죄에서 이기신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새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새 날이 되면, 우리는 생명과 즐거움이 넘치는 새 날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