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다툼

선악의 다툼
창세기 31장 17절~42절

창세기 31장 42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영성신학 강의를 어제 시작하였다. 수업을 들으시는 한 권사님께서 법원에 가서, 재판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머리가 깨지듯이 아팠다고 했다. 아픔을 경험한 권사님께서 법원에는 갈 곳이 못된다고 말했다. 권사님은 자신의 머리가 아픈 이유가 재판장에 있는 분열, 시기, 속임, 욕심의 악한 영이 그곳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곱은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야곱은 라반에게 말하지 않고 떠났다. 라반은 야곱이 떠난 사실을 야곱이 떠난 삼일 후에 알았다. 야곱이 떠난 사실을 안 라반은 그의 형제들과 함께 야곱을 쫓았다. 라반은 칠 일을 달려 야곱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라반이 300마일이나 되는 먼 거리를 단 7일 만에 갔다(야곱이 하루에 30마일씩 10일을 갔다고 가정하면). 라반이 급한 마음으로 야곱을 쫓았음을 알 수 있다. 라반이 야곱에게 도착한 그 밤에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창31:24).”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야곱에게 선악을 말하지 말라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라반이 야곱을 쫓는 목적이 야곱이 돌아오도록 설득하거나, 야곱이 소리 없이 떠난 사실에 대하여 책망할 목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라반은 야곱을 죽여서 야곱이 가진 모든 재산을 빼앗을 목적을 가졌다. 그 밤에 하나님은 야곱을 보호하기 위하여 라반에게 나타나셨다. 야곱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라반에게 분명하게 보이셨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야곱도 자신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함께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라고 말하는 야곱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음을 간밤에 다시 깨달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가 선악을 다투고 싶어도 선악을 다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선악을 가리신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정리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선악을 다투려고 하면,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신다.

불리함에서 유리함으로

불리함에서 유리함으로
창세기 31장 1절~16절

창세기 31장 2절~3절, “2절: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3절: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점이 있고, 얼룩무늬가 있는 양은 야곱의 것이 되었다. 야곱은 목축을 하면서 양 떼의 유전법칙을 알았을 것이다. 야곱은 경험으로 알게 된 유전법칙을 가지고 양 떼를 불리기 시작하였다. 야곱이 생각한 이상으로 양 떼가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야곱의 양 떼는 엄청나게 수가 늘었지만, 라반의 양 떼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게 늘었다. 야곱은 늘어난 양 떼로 인하여 부자가 되어 많은 남녀 종을 거느리고 많은 약대와 나귀를 소유하게 되었다(창30:43).

야곱이 많은 수의 양 떼를 소유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라반의 양들 가운데 많은 수의 양들이 점이 있고, 얼룩무늬가 있는 양이 되었다. 야곱이 양에 대한 유전지식이 라반이 소유한 아롱진 것과 점이 있는 양들을 점과 얼룩무늬가 있는 양으로 바뀌어 놓았다. 야곱의 유전지식보다 더 빠르게 점과 점과 얼룩무늬가 있는 양이 늘었던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야곱의 목축이 늘어난 것을 본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을 시기하여 그를 모함하였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창31:1)”고 라반의 아들이 말하고 다녔다. 라반은 아들들의 말을 듣고 야곱을 전처럼 대하지 않았다(창31:2).

처음 야곱과 라반이 계약 당시에는 라반에게 유리한 계약이었다. 그러나 라반에게 아무리 유리한 계약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뒤집으시면 뒤집히게 된다. 라반에게 유리하게 보였던 계약이 오히려 야곱에게 유리하게 되었다. 라반이 아무리 자기의 소유를 지키고, 목축의 수를 늘리려고 하여도 하나님을 막을 수 없었다.

라반은 자기의 목축과 야곱의 목축을 분리하였다. 라반의 목축은 야곱에게 맡기지 않고 라반의 아들들이 맡았다. 또한 야곱의 목축과 라반의 목축을 멀리 떨어트러 놓아서 서로 섞이지 않게 하였다. 이렇게 라반은 재산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였지만, 야곱의 목축의 수는 늘어갔고 상대적으로 라반의 목축의 수는 적어졌다. 이에 라반의 아들들이 몹시 흥분하여 야곱이 라반의 소유를 도둑질해 간다는 터무니 없는 모함을 하였다.

야곱의 목축의 수가 늘었으면 라반의 목축의 수도 늘었다. 야곱의 목축의 수가 라반의 목축의 수보다 더 빨리 늘었다. 라반은 야곱이 가진 목축을 탐내었다. 야곱이 가진 목축들이 다 라반의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라반은 야곱이 가진 목축을 다 빼앗으려고 계획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라반의 계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야곱에게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바꾸셨다.

오늘 우리에게 놓인 불리함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불리함을 보면 불리함은 더 커진다. 그러나 우리가 불리함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오늘의 불리함은 작아지고, 작아진 불리함은 내일의 유리함으로 바뀐다.

라반과 함께 있을 때

라반과 함께 있을 때
창세기 30장 25절~43절

창세기 30장 27절, “라만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네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더 목을 조이는 때가 있다. 그 때 사람들은 우울해져서 자신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도 기도는 하지만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여 기도를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을 2~3년 동안 하지 못하면 자신을 비관하기 시작한다. 취업을 하려면 실력이 월등하든지, 적절한 환경이 받쳐주어야 취업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그저 착한 학생으로 살았던 자신을 비관한다. 인생의 늪에서 헤메고 있을 때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는가? 하나님께 돌아 가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다시 시각을 맞추어야 깊은 인생의 골짜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야곱은 14년 동안 라반 밑에서 인생의 골짜기를 경험하였다. 야곱은 인생의 골짜기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는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라반이 야곱을 놓아주지 않았다. 라반이 야곱을 놓아주지 않은 이유는 ‘여호와께서 야곱으로 말미암아 라반에게 복을 주신 줄’을 라반이 알고 있었기 때문었다. 하나님이 야곱을 통하여 라반을 복을 주셨고, 야곱은 라반때문에 인생의 골짜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라반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야곱을 14년 동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학대를 하였다. 그로 인하여 야곱은 인생의 깊은 골짜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교회에도 라반과 야곱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라반이 복이 있어서가 아니라, 야곱이 복이 있어서 교회가 복을 받고, 라반이 복을 받는다. 그러나 라반은 자신 때문에 교회가 복을 받고,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교회 안에 있는 야곱은 눈물을 흘리게 되고, 고통스러운 인생의 골짜기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야곱이 복을 받아야 하는데 야곱은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라반이 야곱 때문에 인생의 봄날을 맞이한다.

이러한 때 야곱이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오늘 성경이 라반과 함께 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라반을 벗어나는지 그 방법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가 라반과 함께 있다면 라반을 떠나거나 라반을 떠날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을 세워야 한다. 믿음으로 라반과 함께 하겠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의 골짜기를 스스로 선택하는 꼴이 된다. 때로는 인생의 골짜기가 하나님이 주신 연단이 아니라 우리가 우매해서 걸어가는 골짜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